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9
Chapter9. 눈 먼 사랑이야기
특별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여서 특별한 거야
내가 쓴 글들을 다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결혼을 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믿지 못할 이야기이고, '말세구나'라고 체념 섞인 한숨을 내쉬어도 내가 결혼을 하였다는 것은 진실이다. 이렇게 단호한 화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소설이었나 하는 의심을 하시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렇듯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롭고, 어메이징 하며 기괴하기까지 한 이야기여서일까?! 나의 결혼스토리는 진하게 라디오 방송을 탄 적이 있다.
나의 이야기가 방송된 프로그램은 'SBS 파워 FM 박소현의 러브게임'이었다. 내 생각보다 내 사연이 파워가 있었나 보다. 사실 당시엔 아내가 임신으로 입덧이 심할 때라 사연이 방송되면 외식 상품권 같은 것이라도 받아서 맛난 걸 먹으러 가려고 보냈었는데, 내 사연은 그 해 SBS라디오 청취자 대상에서 제법 큰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박소현의 러브게임 러브게임의 법칙 청취자 대상'이라고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나의 사연이 등장한다. 제목은 'SBS 라디오 청취자 대상 박소현의 러브게임 – 러브게임의 법칙 – 김보성'이다. (혹시 믿지 못하실 분들을 위해 유튜브 주소를 붙인다. 주소 : https://youtu.be/1j4j6FiQpts)
그런데 이 놀라운 이야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연 자체가 좀 무겁기도 했지만, 작가님들의 손을 살짝 거치며 MSG가 가미되고 나니 이 사연이.... 내 사연이.... 방송에서는 아내가 무척이나 천사같이 나와버렸다. 아내마저도 본인은 이런 사람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으니... 그래서 이번엔 브런치에서 나의 글이 갖는 분위기처럼 좀 가볍게 다시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글을 보시는 분들은 글과 유튜브의 라디오 방송을 같이 보시면 소소한 재미가 더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내를 만난 곳은 교회였다. 그렇다. 난 교회를 다닌다. 어린 시절 혹자들은 이성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한 채널로써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들 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이다.) 어머니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셨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병약한 소년'이었다보니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좀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아내는 친구 와이프의 친구였다. 그러다 보니 넷이서 놀 기회도 종종 생기고 함께 어울리다 보니 좋은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역시 밝고 긍정적인 사람의 기운이 물씬 나는 것이었다. 차곡차곡 함께 시간을 쌓아가며 지내던 우리들은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했다.
연애 초반에는 다른 연인들과 다를 바 없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함께 영화 보고, 밥도 먹고, 쇼핑도 하면서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찾아온 것이 나의 각막이식이었다. 각막이식을 해야 하고 기존의 녹내장과 같은 질환들이 있어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병원에서 듣고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에게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일들인데 그 험난한 길을 굳이 같이 갈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아내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선택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럼 결혼식을 수술 이전에 할 것인지, 수술 이후에 할 것인지와 같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반응을 내보였다. 결혼을 하고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가장 고맙고 감동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이런 순수한 모습이 아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이식 수술도 받고 그렇게 좋은 일만 가득한 채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현실은 역시 옛날이야기와는 달랐다. 앞선 챕터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거부반응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 거부반응이 잘 잡혔으면 참 좋았을 텐데, 거부반응을 위해 면역력을 억제하다 보니 균에 의한 감염이 발생해 거부반응 치료는 중단되고 감염치료에 전념하여서 나는 다시 참으로 눈에 뵈는 게 없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이때가 첫 번째의 각막이식을 앞두었을 때보다 더욱 마음이 시렸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첫 번째는 이식을 하면 상황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긍정적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를 맞이하고 보니 참으로 내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던 때였다.
바로 이 춥고 시렸던 시간에 우릴 찾아와 준 것이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아이였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나의 시련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 아내가 들려준 소식. "임신"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의 아이는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아빠에게 이미 기운을 북돋아 주며 세상 구경할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