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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샘 Feb 03. 2022

동병상련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4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Chapter4. 동병상련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 서로 간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은 때론 세계 최고 심리치료사의 그것보다도 위대하다.


하루하루 수업을 받으며 지낸 나날은 훈련  자체로도 매우 즐거웠지만 같이 수업받던 동료들 덕에 수배  즐거운 시간이었다.


재활훈련 과정은 중도실명자를 위한 과정이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경우 보통은 맹학교에 진학하여 수업을 받으며 삶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습관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후천적 요인에 의해 실명에 이르게  경우에는 이런 삶의 지식들을 바로  지역의 복지관 재활훈련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재활훈련을 함께 받는 나의 동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사고로, 질병으로, 의사의 실수로 시력을 잃은 나의 동료들...   쉽지 않은 여건임에도  함께 모이면 웃음이 밖으로 퍼졌고, 즐거움이 묻어났다.

 

사회에 나가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주변에게 짐이   밖에 없는 처지지만, 우리들끼리 있을 때는 서로가 동등했고, 함께 모여 문제도 해결할  있었다. 쉬는 시간엔 믹스커피를 마시며, 초보 맹인의 삶을 나누었고 수업이 시작되면 서로를 독려하여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곤 했다.


특히 우리의 자립을 위해 23일간의 엠티를 가는 행사가 있었다. 선생님들이 동행 해주시긴 했지만 근처 마트에서 엠티에 필요한 장도 우리끼리 보고 각자   있는 요리도 준비하여 엠티 장소에서 직접 요리를 해서 나숴 먹는 시간도 준비되어 있었다.


사실 장을 볼때부터 그야말로 죄충우돌이었다. 우리들은 소리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서로를 크게 부르고 답했다. 문제는 대형마트에 가서도 몇몇 형님들이 볼륨을 낮추지 아니하시고 “누구야 일루와봐!!” “여기야여기!”등으로 발성을 하시니 마트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면목이 없어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물론  면목이 있었다고해도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헌데 한참 장을 보다가 알았다. 그렇게 소리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야 말로 진정 부끄러운 행동이란 것을 말이다. 시각장애인이 그걸 부끄러워해서는 동료들을 놓칠 뿐이고, 동료들을 놓친다는 것은 낙오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물건을 찾아 우왕좌왕하긴 했지만 하늘의 보살핌과 지구 천변만화의 조화로 인해 무사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여행길에 오를  있었다.


모든 여행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게 마련이다. 그런데 하물며 눈에 뵈는것도 없이 떠난 여행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라는 근심이 가득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같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는 즐거웠지만 무거웠고 수다스러웠지만 정적이 있는 그런 상태였다.


헌데 일단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나니 우리와 함께 왔던 무거움과 정적은 차에 두고 내릴  있었다. 도착한 곳은 백운산 휴양림이었다. 휴양림이란 단어에서 오는 느낌 그대로  장소는 우리에게 휴식을 안겨주었다. 예전처럼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낸 그림같은 모습들을 눈으로  수는 없었지만, 숲이 전해주는 그들의 향기와 온몸으로 느껴지는 산들바람의 시원함, 그리고 마음에 와서 닿는 산의 목소리가 모든  내려놓고 이곳에 머물다 가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여행은 즐거웠다. 끼니 때마다 당번을 정해서  요리는 엄청난 맛이 있지도 않았고, 풍성하지도 않았지만, 입이 즐겁고 마음이 풍성한 식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일렬로 누워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웠다. 중도실명이라는 독한 술을 받아  우리들은 누구도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위로 받고있었고,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물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우리들이 실제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둘째  우리는 직접 김밥을 싸서 산책을 가기로 했다. 김밥은 싸는 이와 써는 이로 팀을 이루어 진행됐다. 나는 그래도 요리의 일가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 자취해  적도 있는 터라 김밥을 싸는 고난도의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김밥을 싸본 이는  안다. 그게 그냥 만다고 싸지는  아니라는 것을! 근데 나와 팀을 이뤄 김밥을 싸는 형님이 내가  놓은 김밥을 썰면서 계속 옆구리를 터트리는 것이 아닌가?! 터진 김밥을 누가 먹을 거냐며 서로 옥신각신 했지만 결국 우린 옆구리 터진 김밥들을 주워담아 산책길에 나섰다.

산책로는 선생님들이 미리 답사를 해놓으셔서 흰지팡이를 짚고 걸으면 크게 장애물을 만나지 않는 평탄한 길이었다. 하지만 산속에서의 평탄함은 도시에서의 평탄함과 발음만 같고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찰나보다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워 보폭이 좁아졌고, 평소에 같은 거리를 걸을  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렇게 산책을 마쳤을 무렵엔 긴장해서 흘린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나도  정도를   있구나하는 성취감이 슬쩍 고개를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이런 마음들을 가질  있도록 준비된 코스였겠지


어느  갑자기 스스로   있는 일이 절반 이하로 줄어버리면서 내게 남은  자존감의 추락뿐이었다.

...  이것도 못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그런데  여행길에선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지만 우리끼리 해내고  혼자 힘으로 대다수의 것들을 하게되니 거의  꺼진  알았던  자존감의 불씨가 약간이나마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재활훈련 당시엔 그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따르기만 했는데 말이다.  23 간의 동료들과의 여행은 정안인(시각장애인이 아닌 보통 사람을 일컫는 ) 끼리여도 기억에 남을 추억임이 확실한데, 인생의 쓴맛을  우리 동료들끼리 다녀온 여행이었으니 나의 기억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도  해의 봄은  전까지 지나갔던 어떤 봄보다 봄내음이 물씬 배어든 봄이었다. 그리고 봄날의 햇살보다 따스했던 사람들의 온기를 남기고 계절은 여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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