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되어 버린 옷과 나

by 이길용

무척 아끼던 옷 하나가 있습니다. 짙은 감청색 폴라티였는데, 목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도 좋았고, 부드럽게 몸매를 감싸는 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그 옷을 줄기차게 입었더랬죠. 그렇게 입기를 꽤 오랫동안 한 것 같습니다. 이제 목 주변도 늘어지고, 손목 부분도 헤어지고 해서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을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을 되네인 것이 벌써 수년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여태껏 이 친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작 옷인데, 그래봐야 물질덩어리인데...


크게 마음먹고 버리는 옷더미 속에 이 녀석을 구겨 넣은 것이 벌써 수차례. 그런데 결국 돌아올 때 늘 내 손에 붙어있던 것도 이 옷이었습니다. 다른 옷들은 아무 미련 없이 헌 옷보관 창고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는데, 이 친구를 손에 들라치면 잊지 못할 많은 기억이 동시에 제게 소리칩니다.


고작 옷일 뿐인데, 이 친구는 순간 제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 옷을 입고 만났던 사람들, 이 옷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일들, 또 슬펐던 일들, 이 옷과 함께 했던 정겨운 이야기나 때론 무척 억울했던 이야기까지...


고작 물질 덩어리, 고작 천 조각을 이어 붙인 옷인데도 내 몸과 맘의 많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녀석은 내게 더는 흔해빠진 옷이나 물질 중 하나일리가 없고,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질도 사람의 기억과 추억으로 생명을 이어가나 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 친구는 헌 옷 바구니 탈출에 성공합니다. 많이도 헤지도 낡았지만, 또 당분간 이 친구는 명을 이어 저와 함께 또 적잖은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와 옷은 하나가 되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