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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May 15. 2018

노을이 아니어도, 석양이 아니어도 좋아

순천만 갈대 습지 공원


  해 질 녘 갯벌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고, 갯벌 사이로 난 물길은 석양에 물들어 붉게 빛난다. 그 위로 리듬감 있는 물살을 만들며 배 한 척이 바다를 가른다. 해를 등진 갈대는 햇살을 통과시켜 보석처럼 빛난다. 망원 렌즈로 당겨 찍은 앵글에 군더더기는 없다. 갯벌과 바다와 배... 순천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었다. 적당히 시간을 맞춰 여수를 떠나 순천에 도착했다. 한데...


  향일암에서 동동주 한 주전자를 비우고 내려오다 보니 바다를 떠나기 싫어졌다. 버스 시간표를 보니 4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고 지도 앱으로 검색해 본 결과로는 다음 정거장까지 걸어도 시간은 남았다. 얼근히 올라온 취기 탓에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이 앞섰다. 거기에 약간의 실수까지 겹쳐 결국 세 정거장 정도를 걸어야 했다. 그 이후 오동도에서 엑스포공원역까지 걷는 무리수까지 겹치는 바람에 순천에 도착해서는 그냥 뻗어버렸다. 날씨도 참 좋았는데... 그저 나이 생각 못한 의욕과잉이 아쉬울 따름이다.





  결국 황금 같은 매직 아워는 숙소에서 종아리를 주무르며 보내버렸고, 순천만은 다음날 오전에 찾게 된다. 오전 시간 대부분은 국가정원에서 보내고 순천만 습지공원으로 향하는 모노레일을 탔다. 모노레일 종점에서 순천만 조망 포인트인 용산전망대까지는 3~4Km 정도, 왕복 7~8Km이니 제법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휘적휘적 걷기로 했다. 습지를 왼편으로 두고 강둑을 따라 걷는 길은 한적하다. 조용히 생각하며 걷기에 아주 좋다. 다만 날이 좀 더 더워지면 그늘이 없어 조금 고생할 듯싶기도 하다. 





  습지는 온통 겨울을 보낸 갈대와 새로 돋아나는 어린 갈대가 어우러져 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베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록과 색 바랜 베이지는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어 습지에는 재미난 패턴이 그려진다. 진흑을 잔뜩 머금은 강물과 함께 묘한 대비를 이룬다. 새 것과 옛 것, 그리고 시간을 따라 늘 흘러가는 물줄기... 각각의 색깔만큼이나 개성 있는 무늬를 띄고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순천만 습지공원 주차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용산전망대까지는 약 1.3Km이니 걷기에 그다지 부담되는 거리는 아니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되면 여기로 바로 오는 편이 낫겠다. 아무튼 여기부터는 강둑길이 아니고 습지 위로 산책용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좌우로 펼쳐진 갈대밭 밑으로 망둥어가 뛰어다니고, 개구리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를 거스르는 것 없이 활짝 펼쳐진 습지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전망대 올라가기 전 잠시 쉬어가라고 마련되어 있는 정자를 지나쳐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는 만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오르막길을 잠깐 지나쳐야 한다. 울창한 숲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과 그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새순들을 찍으며 숨을 고른다. 아직 여린 새순들은 쨍한 한낮의 햇살을 경쾌한 초록으로 통과시키며 스스로를 살찌우고 있다. 몇 주만 지나도 제법 튼실한 나뭇잎으로 자랄 녀석들이다. 









  가파른 오르막 끝은 나무데크로 이어진다. 이게 없었더라면 힘들게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했을 뻔했다. 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이 활짝 열린다. 사진에서 보아오던 그 모습이다. 다만 석양빛에 불타는 황금빛 갯벌이 아닐 뿐. 마침 예의 사진처럼 유람선 한 척이 수로를 지나간다. 익히 보았던 구도를 떠올리며 한 컷 담아 보지만 석양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 삼각대 펼쳐 놓고 자리싸움하고 있을 억척스러운 사진가 양반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한가한 이 시간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 


  남이 찍어 놓은 멋진 사진과 똑같은 사진 한 장 찍어 보겠다고 바글바글 포인트 찾아 몰려다니는 분들을 보면 그 열정이 부러우면서도 정작 그 장소가 주는 느낌 중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물론 매직 아워의 순간 펼쳐지는 그 멋진 장관을 담는 것은 소중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마추어 사진가의 입장에서 늘 스펙터클한 노을 사진을 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행 다니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진가 분들은 구름이나 안개 때문에 석양이 시시하면 투덜거리면서 바로 장소를 떠나 버린다. 어떤 분들은 날이 안 좋다 싶으면 포인트까지 오지도 않고 술집으로 향하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이 오로지 그 한 컷만인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용산전망대에서 저 아래쪽 해변으로 길이 계속 이어지는 모양이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게 아쉽다. 다음에는 석양에 맞춰 저 아래 어디쯤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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