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20년 만에 다시 찾은 루체른

변하지 않은 도시, 많이 다른 느낌

by 기타치는 사진가

96년 4월, 이른 아침 취리히 공항에 내려 취리히 시내에서 잠시 방황하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도시를 찾아 도착한 곳이 루체른이다. 당시 아내는 첫 해외여행이었고, 나는 1년 전 뉴욕 출장 이후 두 번째 여행이었다. 대학 4학년이던 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90년 들어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이 늘어나긴 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졸업하고 군대를 가서 93년 결혼할 때도 군인 신분이었던 나는 해외를 나가려면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기에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다녀왔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96년의 유럽 여행은 우리 부부로서는 첫 해외여행이자 뒤늦게 떠난 신혼여행인 셈이다.


이제 막 돌이 지난 혜진이는 장모님께 맡겨두고 비행기표와 렌터카만 준비하고 떠난, 어찌 보면 무모한 여행이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은 패키지여행이 대부분, 자유여행은 대학생들이 한 두 달의 시간을 갖고 계획을 세워가며 다니는 극히 제한된 영역이었다. 게다가 해외에서 차를 빌려 여행하는 것은 어찌 보면 모험가의 영역에 속할 정도였다. 하지만 서점에서 막 발간되기 시작한 렌터카 여행 관련 서적들을 몇 권 읽으면서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비슷하다는 믿음이 생겼고, 아내와 단 둘이 찾아다니는 자유로운 여행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매력은 취리히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취리히 시내로 들어오면서 끝났다. 일요일 이른 아침 낯선 도시의 좁을 골목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할지도 난감했다. 아무리 멋진 낭만이라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설프고 당황스러운 법.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전적으로 지도와 도로 표지판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야 했고, 낯선 신호체계와 회전교차로는 운전하는 나는 물론이고 길을 안내하던 아내까지 초토화시켰다. 힘겹게 돌고 돌아 루체른 중앙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광안내센터를 찾아가 호텔을 정하고 나서야 스위스에 도착하고 나서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는 걸 깨달았고, 호텔 체크인 후 프런트에 물어 인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았다. 음식이 나오자 아내는 눈물로 반나절의 고생을 쏟아냈다. 22년 전의 기억이다.


비트라 캠퍼스에서 혜진이와 헤어지고 혜나와 둘이 바젤을 거쳐 루체른에 도착했다. 중앙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역으로 나왔다. 역 광장에는 70년대에 불타 없어진 옛 역의 입구 아치가 기념비처럼 우뚝 솟아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서울역이 루체른 역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던데, 이 아치가 구 서울역 입구 정도 되는 모양이다. 정면으로는 옛 시가지 건물들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카펠교가, 우측으로는 백조가 떠 있는 루체른 호수가 펼쳐진다. 구시가지 쪽으로 다리를 건너가다 보니 루체른 호수 너머로 필라투스와 리기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파란 하늘과 봉우리 사이에는 흰 뭉게구름이 포슬포슬 뿜어져 나온다. 기억 속의 풍경이 현실과 겹쳐지면서 다시금 화려하게 색을 입는다. 을씨년스럽던 4월의 루체른 보다는 쨍한 8월의 루체른이 훨씬 화려하다.


거리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익숙한 등산복 차림의 단체 관광객들도 많이 보인다. 브뤼셀이나 브뤼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게다가 덥다. 유럽에 도착한 후 잠시 잊고 있었던 서울의 더위가 다시 느껴진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미소보다는 더위가 베어 나온다. 옆에 있는 혜나의 표정도 밝지 않다. 어제부터 감기 기운이 시작되는 것 같더니 오는 동안 차 안에서 계속 훌쩍거렸다. 코가 심하게 막혀 머리도 띵한 모양. 그래도 시내 구경은 하겠다기에 빈사의 사자상으로 향했다.



96년 아내와 왔을 때도 제일 먼저 찾은 곳이 빈사의 사자상이었다. 사자상 바로 위로는 빙하공원이 있다. 빙하가 만들어낸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전시시설을 만들어 놓은 곳. 입장료를 제법 내고 들어가 보긴 했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잠시 사자상 앞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도착했다. 잠깐 사자상을 둘러보던 아주머니들이 빙하공원 입구에서 기웃거린다.


“여기는 뭐래? 돈 받는 모양 인디...” 호기심 많은 아주머니시다. “거기 별 거 없더라고요.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갈 건 아닌 거 같아요.” 해외에서 우리말을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공간일 거 같아 말을 건넸다.


“그래요? 고마워요. 근데 유학생들인가 봐요?” 역시 호기심이 많은 아주머니였다. “저희 학생 아니에요.” 우리가 어려 보였다보다. “그럼 신혼여행 왔수?” “신혼여행은 아니고요...” 이야기를 하려는데 말을 막는다. “그럼 여기 살아요?” “아니요...” 뭐라 말할 틈을 주지 않고 호기심 아주머니는 “신혼여행도 아니고, 살지도 않는다니... 허... 거 참... 요새 젊은이들은 도통 모르겄네...” 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호기심은 많은데 상상력은 모자라신 아주머니.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이상야릇한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애는 맡기고 여행 왔어요.”했더라면 아주머니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채워 줄 수 있었을까?


빈사의 사자상은 중앙역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아주 슬프고도 비장한 스위스의 아픈 역사가 사자상에 얽혀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왕궁을 지키던 스위스 용병들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스위스는 알프스 산골짜기의 가난한 나라였던지라 먹고살 것을 마련하기 위해 건강한 장정들은 해외 용병으로 팔려 나가곤 했다. 루이 16세를 호위하던 스위스 용병들은 전세가 기울면서 이제 그만 도망가도 좋다는 권유를 뿌리치고 시위대와 맞서 싸움을 계속하다 700명 전원이 사망하고 만다. 여기서 물러나면 스위스 용병의 명성을 잃게 될 것이고 더 이상 다음 세대들이 용병일을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빈사의 사자상은 이들의 처절함과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창에 찔린 사자가 절벽 밑 동굴에 숨어 죽기를 기다리는 모습, 그 주변으로 놓여 있는 스위스 문양이 그려져 있는 방패와 창들... 가까이 가서 세심히 들여다본다면 참으로 처연하면서 아름다운 조각상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찬찬히 음미해 가며 사자상을 감상하기엔 관광객도 너무 붐비고 날씨도 너무나 뜨거웠다. 게다가 연못 너머 멀찌감치 보이는 사자상은 그 크기에 비해 너무나 작게 보인다. 오죽하면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과 더불어 실망하게 되는 관광지로 손꼽히게 되었을까. 혜나에게는 잠시 말을 꺼내 보았지만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아직 역사와 자연에서 재미를 찾기엔 어린 나이인 듯하다. 시내로 나와 카펠교로 향한다.




카펠교 역시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그나마 물 위에 있고 목조 건축물이라 그런지 다리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은 시원하다. 카펠교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 건물들은 크리스마스 카드의 한 장면처럼 아기자기하다. 파란 하늘에 나부끼는 빨간색 스위스 국기는 무채색 건물들 위로 또렷하게 흔적을 남긴다. 도시의 풍경과 아주 잘 어울리는 국기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유럽의 국가들이 단순한 패턴으로 국기를 디자인한 이유가 화려한 도시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풍스러운 중세의 모습은 브뤼허에서 충분히 느꼈고,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다양한 도시의 맛은 브뤼셀에서 느끼다 보니 혜나에게 루체른은 좀 애매해진 감이 없지 않다. 여기서 여행을 시작했으면 루체른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달랐을 텐데, 게다가 뜨거운 햇살과 붐비는 관광객들에 지친 우리는 루체른 역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만 있으면 바젤에서 기차를 타고 혜진이가 도착할 예정이니 그동안 저녁거리도 마련하고 스위스 프랑으로 환전도 하고 시간이 남으면 좀 쉬기로. 혜나의 감기 기운이 심해지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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