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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Mar 01. 2020

죽음 속에서 탄생한 회화

영화 작가미상을 보고 난 몇 가지 감상


# 1.

"네 명 중 세 명이 나치당원이었습니다."


"나머지 한 명에게 학생을 맡기겠습니다."


쿠르트의 아버지는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학교에 남기 위해 나치당원이 되었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결국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다. 반면 우성학에 입각한 학살의 주범인 엘리의 아버지는 소련 점령군 장교 아내를 난산으로부터 구해주면서 전범을 모면한다. 계속 엇갈리는 두 사람의 운명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념 대립의 양상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 2.

나치가 패퇴한 동독의 드레스덴, 국가주의 회화 대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자리를 차지한다. 국가와 민족 대신 노동자와 계급이 회화의 목적이 된다. 어디고 '나(Ich)'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확한 목표를 예술에 강요하는 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 3.

서독 뒤셀도르프로 피신한 쿠르트에게 회화는 이미 죽은 존재. 아방가르드가 주류로 자리 잡은 그곳에서 쿠르트는 회화를 부활시킨다. 회화를 죽이는 데 선봉에 섰던 사진을 수단으로, 나치가 강요했던 죽음의 기억을 재료 삼아. 바르트는 사진을 죽음의 기억이라고 선언했지만 쿠르트는 죽음의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회화를 탄생시킨다. '나(Ich)'에서 만들어진 자유가 새로운 탄생의 양수가 된다. 



# 4.

엘리자베스의 죽음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소련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면서 지반트 교수의 목숨을 살리지만 제법 자란 어린이의 모습은 지반트 교수에게 위기로 다가온다. 딸의 태아를 낙태시킨 지반트 교수는 끝내 그들의 자녀를 막아내지 못한다. 자유와 사랑은 위대하다. 



# 5.

쿠르트의 모델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들은 꼭 찾아서 보자. 영화의 감동이 그대로 그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온다. https://www.gerhard-richter.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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