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아프리카, 아프리카 마치 저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를 알기 위해 난 별로 한 일이 없다.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들이 모여 있는 대륙, 야생동물들의 천국, 흑인 노예들의 가슴 아픈 역사…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런 선입견이 전부였다. 그 선입견을 깨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얄팍한 지식 이외의 무엇을 추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카보베르데를 아세요?”
“전혀 몰라, 그게 뭐야?”
“힌트 하나, 아프리카와 관련이 있어요.”
“모르겠는걸. 음식 이름인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친구는 책을 한 권 건넨다. 토요일 오후, 우리술연구소를 찾아온 친구가 건네 준 한 권의 책, ‘카보베르데, 당신이 모르는 아프리카(내 맘대로 줄여서 카모아)’.
세네갈의 서쪽 560Km 떨어진 대서양 바다 위의 작은 섬, 제주도의 두 배 조금 넘고 5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섬, 카보베르데 공화국이다. 모를 만도 하다. 아니, 왜 이 섬을 알고 있는 거야? 가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이겠다.
사람 사는 곳 어딘들 사연을 알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L.A. 에서 1,000Km 떨어진 미국 사막 한복판 작은 시골 마을, 나무로 만든 하나짜리 주유 스탠드를 운영하는 6.25 참전용사 백발의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유타주의 보울더는 내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하게 되었고, 마늘 한 통을 통째로 튀겨 주던 캐널시티 옆 뒷골목의 이자카야는 후쿠오카를 떠올리는 첫 이미지가 된 것처럼.
카보베르데는 대항해 시대 이후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 섬이다. 인도항로를 개척하던 포르투갈 선단에 의해 발견된 이후 카보베르데는 이후 노예무역의 거점으로, 때로는 해적들의 보급기지로 이용당한다. 1800년대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10명 중 4명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노예제도가 붕괴되고,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버려진 카보베르데는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될 때까지 많은 시련을 겪고 오늘에 이르렀다.
카모아는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작은 모임의 회원들이 각자가 알고 있는 카보베르데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어떤 이는 음악을 통해, 어떤 이는 소설을 통해 카보베르데를 바라본다. 참고문헌 목록을 빼면 80페이지가 되지 않는 분량에 다섯 꼭지의 글이 빼곡히 들어차 있으니 심도 깊은 내용이나 심오한 통찰을 찾아내야 하는 부담은 전혀 없다. ‘아이언맨 졸라 멋있어’로 정리된 마블 영화 후기를 만나는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계기가 되었건 각각의 꼭지들은 카보베르데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카보베르데에 가 봤건 못 가봤건 간에 말이다. 팝송으로 영어를 배우고, 미국을 알게 된 대부분의 우리 세대가 친미적인 성향을 띌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작은 섬나라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련을 섭렵한 카보베르데의 이야기가 역사적 시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의 정서와 결이 맞아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 가량 책을 읽고 나서 버킷리스트를 추가했다. 배경으로 틀어 놓았던 카보베르데의 음악이 더욱 감성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는 꼭 카보베르데를 가리라. 그전에 세자리아 이보라의 노래 몇 곡은 반드시 익혀 두어야겠다. 어설프게라도 동양인 관광객이 이보라의 노래를 연주하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제법 커다란 선물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