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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Jun 21. 2020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행 연수 일주일이 되도록 비 한 번 안 온다. 비가 내려야 비 오는 날 운전을 알려줄 텐데 말이다. 주행 연습을 마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비 오는 날 연수 한 번 더 하자고 약속했다. 

연수 6회 차, 이번에는 어디로 연습 가볼까? 고민하던 찰나 친구가 먼저 파주 헤이리 마을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아주 좋은 자세다. 평소에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직접 운전해서 가보겠다는 도전 정신! 일산에서 파주를 가려면 자유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며칠 전 얼떨결에 달려보긴 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주행해보자. 자유로는 6~7차선에 가깝고 승용차, 트럭 등 주행이 많은 도로이지만 차분하게 잘해나갔다. 아직 초보이지만, 이렇게 계속 익히다 보면 운전 스킬이 향상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목적지에 도착해 자연스럽게 진입하는 것이 아직은 부자연스럽고 가변에 차를 잠시 정차하는 것도 어설프지만 한두 번씩 그 횟수를 늘려가다 보면 나아질 테다. 친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담하게 운전을 했다. 늘어난 차량 행렬에 겁먹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라는 대답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적어도 차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주행 연수 동안 임진각에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일산에 있는 한옥 마을도 다녀왔다. 길을 잘못 진입해 다시 돌아오는 경험, 빽빽한 주차장에서 주차하는 연습, 좁은 논두렁 길 연습,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는 차량에 대한 방어 연습 등. 생각지도 못한 도로 위 위기의 상황으로 안절부절못할 때도 있었지만 혼자가 아닌 우리는 모든 상황을 잘 넘겼다. 어느 날에는 야간 주행도 했다. 밤 운전이라고 딱히 특별할 건 없지만, 한 번은 해야지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이패스 구간도 경험해봐야 하니 통일로 IC를 지나 스타필드 고양에 가 쉑쉑버거도 먹었다. 차가 없으면 방문하기 힘든 곳이고, 요즘은 집에서 무엇이든 해결 가능한 시대이다 보니 굳이 갈 필요는 없지만 차가 생겼다는 이유로 나들이를 한 셈이다. 

어버이날 친구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운전면허증이 없는 남편을 보조석에 태우고 십 분 거리에 있는 시댁에 다녀왔다. 친구가 나 홀로 한 첫 번째 주행이다. 별 일 없이 잘 다녀올 것이라 믿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내내 콩닥거렸고 귀가한 친구가 ‘잘 다녀왔어’라고 보낸 메시지를 보고 나니 온몸의 긴장이 눈 녹듯 풀리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시대이지만 점점 화창 해지는 봄날 친구는 강화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전했다.  여행 당일 비 예보가 있었지만, 언제까지 일산만 다닐 수 없으니 조심해서 다녀오길 기도할 수밖에. 그날 전국적으로 폭우가 쏟아졌고 친구가 달린 그 길, 그 하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복 2차선 산길 도로. 친구 운전 역사에 가장 힘든 주행일 수도 있지만, 힘든 만큼 운전 실력도 향상되었으리라 생각된다(비 내리는 산길에서 라이트가 들어오지 않아 당황했다지만 아무 일 없이 잘 다녀왔다).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도 친구가 나를 픽업하러 집 앞까지 왔다. 이제 제법 능숙하게 운전하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건 오히려 잔소리가 될 수 있으니 꼭 필요한 게 아니면 굳이 내뱉지 않기로 다짐한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친구 자세, 차량 내 휴대폰 거치대 등도 좀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사실, 주행 연수 회차를 거듭하면 할수록 친구 걱정이 아닌 내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 내가 알려주는 것 중 놓치는 것이 있진 않을까 고민된 것. 검색창에 몇 가지 질문을 넣었다.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없다. 대부분 달린 댓글이라고는 ‘지인 운전은 안 가르쳐주는 게 맞아요.’ ‘학원을 보내세요’ ‘시작을 하지 마세요.’ 등 부정적인 답 일색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었다. 다만 모두가 꺼리는 그 시간 동안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열 번에 가까운 연수 동안 나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모습도, 친구에 대한 새로운 모습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은 물론 남들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운전을 처음 가르쳐주기로 한 날 내가 다짐한 두 가지.  친구가 '운전은 어렵고 무서운 게 아니다'는 점을 깨닫는 것과 '운전 배울 때 마음이 편하면 좋겠다.'라는 바람. 그 두 가지는 모두 이룬 것 같으니 이 운전 주행 연수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내 인생 최초로 누군가의 운전 선생님이 된 ‘친구의 도로 주행 연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고 꽤 뿌듯한 경험을 내게 선사했다. 친구의 생각도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니 최소한 우리 관계에 금이 가진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했지만, 그냥 우리 둘 다 성격이 좋은 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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