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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Aug 04. 2020

친구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일상을 영위하며 맞이하는 즐겁고 기쁜 순간은 또 다른 엔도르핀을 느끼게 한다. ‘너는 언제가 즐겁고 기뻐?’하고 내게 묻는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 원고를 작성해서 클라이언트에게 보냈는데 수정 사항 하나 없이 만족해할 때, 주차장이 만차라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왔는데 주차 자리가 났을 때 등 소소한 순간을 대답할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그 순간 중 또 하나는 누군가 내 차를 타고 잘 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꾸벅꾸벅 조는 순간이다. 왜 하필 그 순간이 즐겁냐고! 도대체 운전하는 나를 얼마나 믿으면 내가 운전하는 동안 마음 편히 잘 수 있을까? 혹은 졸 수 있을까? 싶어서이다. 그 모습을 보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다.    

아미도 그랬다. 내 차에 타면 간혹 꾸벅꾸벅 졸았다. 주행 중 저도 모르게 고개가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 그냥 편하게 자라고 한다. 그런 아미가 어느 날 운전을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눈여겨본 자동차를 직접 확인하러 전시장에 함께 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차, 캠핑카, 새 차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미는 반짝이는 흰색 새 차 계약서에 사인했다. 사인한 지 이틀 만에 아미 집 주차장에 새 차가 도착했다. 핸들을 처음 잡는 아미를 위해 나는 운전 연수를 해주기로 했다. 사실 처음부터 해주기로 한 건 아니다.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친구 운전 연수를 해준단 말이냐! 아미는 운전 연수를 하기 위해 여자 강사를 수소문했지만, 그 세계는 대부분 40대 이상의 남자 강사가 전부였다. 여자 강사가 몇몇 있었지만, 언제 연수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결국, 여자 강사가 앉아야 할 자리에 내가 앉았다.      


주변 사람들은 ‘지인 사이에는 연수하는 게 아니다’, 혹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냐’ 등 대부분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이미 하기로 한 마당에 재고해보라니! 아미는 나를 믿고 이미 차를 샀단 말이야! 차를 반품할 수도 없잖아!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다. 운전 가르쳐주는 게 쉽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다. 친구와 또 하나의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우리 우정에 금이 갈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전문 강사는 아니지만 십여 년 운전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히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전자석에 처음 앉는 아미가 처음부터 엄청난 속도를 낸다거나, 나를 태우고 어디 기둥이나 다른 차에 박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에 대한 믿음도 사실 있었다.      

여하튼 나는 아미와 열 번이 넘는 도로 주행 연습을 했고 아미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1박 2일 군산 여행을 다녀오는 거로 연습의 종지부를 찍었다. 아미는 아직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운전자이지만 자신감만큼은 베스트 드라이버 못지않다. 아미가 운전을 하면서 그녀 인생은 이전과 달리 좀 더 폭넓어질 거로 생각한다. 초보라 미숙한 점은 경험치가 쌓이면 해결될 일이다. 언젠가 자연스레 멀리 보는 자세도 익힐 것이다. 주행 연습 중 몇 차례 바로 앞 자동차가 아닌 그 앞의 자동차, 그리고 양옆 차선의 자동차의 움직임도 살펴야 한다고 일러뒀지만, 그 말이 즉각적으로 아미에게 새겨질 리 만무하다.  

    

운전하면서 멀리 내다보는 건 인생에서도 같은 맥락이다. 바로 앞 자동차의 브레이크 신호를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신호등을 보고, 도로 위 차량의 흐름을 읽고, 속도를 줄이고, 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눈앞의 인생보다 멀리 내다보며 준비하는 게 필요한 자세 아닌가.      

아미와 도로 주행 연습을 함께한 2020년 봄날, 나는 아미와 좀 더 많이 웃었고 아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배운 점 또한 있다. 그리고 친구로, 동료로, 이웃사촌으로 함께 멀리 더 걸어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멀리 가는 길에 함께 걸어갈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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