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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Feb 03. 2021

좀 모자란 아이가 아니라 장애인이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바보’라고 불리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항상 빡빡머리였고 푸른색의 체육복을 입었으며 팔자 걸음걸이로 양손은 수를 세는 듯한 포즈를 하고 다녔다. 어른을 보면 늘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인사를 받은 어른들은 ‘어디를 가냐?’ ‘밥은 먹었니?’하고 호응을 했지만, 그가 지나가면 인사성 바른 아이라는 칭찬 대신 바보 혹은 좀 모자란 아이라고 했다. 그 소년이 장애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다. 

     

내가 처음 맡았던 사보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던 한 장애인 공공기관 일이다. 사보를 시작으로 기관에서 제작하는 단행본 취재 및 제작 업무도 도맡았다. 장애인 기관 업무이다 보니 만나는 사람의 태반은 장애인이었다. 달마다 적어도 다섯 명의 장애인을 만났고, 만나는 장애 유형은 점점 다양해졌다. 장애 유형별에 대한 이해, 유형별 대처 방안 및 에티켓도 차츰차츰 쌓여갔다. 그럴수록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고, 이해의 폭도 커졌다. 이 일을 하고 나서야 어릴 적 동네에서 바보라고 불리던 그 친구는 바보도, 모자란 아이도 아닌 장애인이었단 걸 알았다. 아마 발달장애인인 듯하다.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그 옛날 시골 동네 사람들은 장애인이란 말 대신 그저 바보, 모자란 아이라고 치부해버렸다. 인터뷰하며 만난 장애인들 역시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병신’ ‘절름발이’ ‘장님’ 같은 치욕적이고 비하적인 표현을 숱하게 들었다고 했다. 인터뷰하며 만난 비장애인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장애인이라면 좀 부족하거나 모자라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했다. 장애인이지만 사회에 진출해 제 꿈을 이루고 그 역할을 하는 장애인 덕에 인식의 변화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은 ‘장애’를 이유로 제약받는 것이 많고, 비장애인은 편견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그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어릴 적 동네에 살던 그 친구가 좀 모자란 애가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어쩌면 모자랐던 건 그 친구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십 년 넘게 한 공공기관의 일을 하면서 그 친구가 종종 떠올랐고 그때마다 모자랐던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장애인이 모두 부족하고 모자란 건 아니다. 물론 장애인이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비장애인 중에도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은 많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존재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빈틈은 있기 마련이고 늘 자신에게 부족하고 모자란 그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우리가 충전해야 하는 것 중 능력의 부재에서 오는 것뿐만 아니라 사고의 결핍에서 오는 것도 충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2W 매거진 8호 '모자람의 쓸모'에 기고한 글입니다. 2W 매거진은 매달 이슈를 선정, 해당 주제에 한국 여성들의 의식과 동시대성을 기록하는 수필 잡지입니다. 등단 작가만이 아닌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글 쓰는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담는 독립 문예지입니다. 2W 매거진은 E-book 형태로 발간되며 리디북스, 교보문고, 예스 24 등에서 1,000원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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