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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Mar 05. 2021

대학교 전공과목처럼 출산이 필수 과정은 아니잖아.

결혼하면 의례적으로 엄마가 돼야 하는 줄 알았다. 특별한 생각도 그렇다 할 계획도 없었다. 여자의 몸은 비슷한 줄 알았고, 첫 번째 유산 후 우리의 몸은 컴퓨터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평균이라는 수치가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란 걸 말이다. 어떻게 임신한 줄 모를 수가 있냐고 물었다. 생리 주기는 늘 불규칙했고 임신이란 걸 알기에 너무 이른 시기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구토를 했고 길을 거닐 때면 50m 채 걷지도 못해 화장실 변기통을 붙잡아야 했다. 임신 가능성을 일도 생각지 못한 의사는 내시경을 권했고 임신일 줄 전혀 몰랐던 나는 그렇게 수면내시경을 해버렸다. 그 후 임신을 알았는데 이미 너무 늦었다. 산부인과를 세 곳이나 돌았다. 그날 함박눈이 쏟아졌는데, 눈이 그렇게 슬펐던 적은 처음이다. 답이 정해진 일이었다. 

몸은 참 정직하다. 뭐 하나 숨기는 법이 없다. 생명의 존재 여부를 명확하게 말한다. 계획하고 한 두 번째 임신에서도 입덧은 나아지지 않았다. 쌀 한 톨 삼킬 수가 없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물만 마셔도 구토가 절로 쏟아졌다. 임신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입덧이 내게 너무 큰 지옥 같다. 검진 이틀을 앞둔 아침, 무슨 일인가 밥을 반 그릇이나 비웠다. 그 모습에 놀란 아빠가 한마디 거든다.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좀 낫나 보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환하던 진료실이 암흑이 되어 빙빙 돌고 있었다. 그날도 눈이 왔다. 제길. 집으로 돌아오는 5분도 안 되는 거리가 몇만 리처럼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울었고 아무도 날 말리지 않았다. 눈물샘이 말라 없어질 때까지 울었다.      


아빠는 손자를 갖기 위해 딸을 희생시킬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손자 대신 자기 딸이 아픈 것이 더 애달픈 사람이다. 유산되지 않았으면 태어났을 그 아이의 예정일 일주일 주 뒤 “둘 사이가 좋으니 몸 상하지 말고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유언을 엄마에게 남기고 먼 여행을 떠났다. 몹쓸 타이밍이다.   

   

그렇게 나는 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유산으로 엄마가 되는 걸 내려놓는 또 다른 계획이란 걸 세웠다. 유교 사상이 짙은 경상도가 고향인 내 친척들의 굳센 권유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본인들이 키워줄 것처럼 낳아야 한다고 성토였던 큰엄마와 고모들에게(시어머니도 아무 말 안 하는걸) 나도 엄마도 십 년을 시달렸다. 주변 사람들도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있어야, 그 아이 때문이라도 산다고 말이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어렵게 출산한 전 직장 동료는 아이를 낳지 않는 나를 외계인 취급했다.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서 약 한 재 먹어보라며 마치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 취급할 때면 짜증이 났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에게 쏟을 정성을 날 위해 쏟고 남편을 위해 쓴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 테지만, 아이가 없다고 해서 열심히 살지 않는 건 아니다. 아이가 예쁜 것처럼 남편이 예쁘고, 아이 때문에 화나는 것처럼 남편 때문에 화가 난다. 아이가 주는 즐거움을 일이 주는 즐거움에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 성취감은 뭐라 말할 수 없게 날 즐겁게 한다. 아이의 성장을 느끼는 대신 내가, 혹은 남편이 성장하는 걸 느끼며 산다.      

엄마가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삶을 거창하게 ‘탈~’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큰 탈출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딩크족으로 살 생각은 아니었지만, 딩크족으로 사는 건 우리 부부가 처음부터 계획한 일은 아니다. 정확히 따지면 계획이 변한 것. 남들처럼 살고 있으나 남들과 다른 게 있다면 ‘엄마’ ‘아빠’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계획한 대로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결혼하면 뒤따르는 출산이 대학교 전공과목처럼 필수 과정이지 선택 과정처럼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 선택이 쉬웠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충분히 만족스로운 삶을 산다. 그 선택이 흔들리면 어떡하냐고? 결혼 14년 차이지만 아직도 흔들리거나 후회해본 적은 없다.


2W매거진 9호 '알을 깨고 나온 여자들'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2yjyj/22226174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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