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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May 21. 2021

사면 되는 걸 굳이 싼다

엄마는 동생을 낳고 몸을 풀던 중 읍내에 집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골에서 읍내로 나와 2년 정도 큰 집에 더부살이하다가 드디어 엄마가 산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에는 소녀의 로망을 실현해 줄 계단이 있었다. 집 안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는 양옥집은 소녀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이삿날 그 계단은 사라졌다. 소녀는 속상한 마음에 계단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문고리만 만지작거렸다.

    

나선형 모양의 계단이 있던 자리에 원형의 식탁이 들어섰다. 반듯반듯한 모양의 식탁 대신 원형의 식탁을 왜 선택했는지 엄마의 취향을 알 수 없지만, 이후로도 우리 집 식탁은 늘 원형이었다. 클래식 또는 모던이라는 스타일 차이만 있었을 뿐. 원형 식탁에 차려진 수많은 끼니 중 유독 맛이 깊었던 건 김밥이다. 요즘에야 김밥 키트(kit)를 팔아 손쉽게 준비할 수 있고 솜씨 좋은 김밥집 찾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김밥 속 재료는 일일이 준비해야 했고 김밥집이 흔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김밥 준비는 번거롭다기보다 즐거워 보였고 왠지 모르게 능숙하고 노련해 보였다. 초등학교 소풍과 운동회 단골 메뉴는 김밥이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엄마의 김밥 싸기는 멈출 줄 몰랐다. 열 줄은 기본이었다. 학교 행사가 아니더라도 엄마는 종종 김밥을 쌌다. 김밥을 싸는 날이면 참기름 때문인지, 엄마의 마음 때문인지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동생과 나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앉아 김밥 꽁다리를 주워 먹기 바빴다. 김밥은 늘 식탁 아래 바닥에 앉아 재료를 펼쳐 놓고 쌌다. 예쁘게 싼 김밥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둥근 모양의 접시에 3단 모양의 탑처럼 쌓아 식탁 위로 올렸다.  

  


엄마는 언제 어디선가 김 밖으로 밥이 나와 있는 누드 김밥을 본 후로는 누드 김밥만 쌌다. 그때부터는 도시락을 열 때마다 엄마가 남달라 보였고 그 김밥 덕에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엄마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내게 기운을 주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김밥을 쌌다.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절정이다. 우리 학교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급식을 시작했다. 별도의 급식실이 없던 탓에 신청자에게는 도시락 형태로 배달되었다. 오전 수업을 마친 후 오후 5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는 토요일 점심이면 급식을 하지 않은 내게도 가끔 도시락이 배달되곤 했다. 3단 찬합 도시락은 온통 누드 김밥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이라 절친들 대여섯이 둘러앉아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김밥 절친인 라면 두어 개쯤 매점에서 사 함께 먹으면 꿀맛이었다. 삭막한 교실도 한순간 야외 공원이 되는 듯했다. 그런 날이면 친구들의 급식 도시락은 찬밥 신세였다.    

김밥을 싸고, 먹던 날 풍경은 내게 늘 좋았던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가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김밥을 싸고 싶어진다. 골라 먹을 수 있을 만큼의 김밥 종류도 깁밥 집도 있지만, 굳이 재료를 사 수고스럽게 김밥 열 줄을 싸고 만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일을 만든다며 잔소리지만, 싸두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 엄마에게 한번 대접하고 싶지만, 사 먹으면 되는 걸 굳이 싸려 한다며 한사코 거절이다.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같지만, ‘먼 훗날 엄마마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가끔 소용돌이치듯 날 무섭게 한다. 그럴 때 ‘원형 식탁 아래서 김밥을 싸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막연히 그때를 준비한다. 소녀의 로망을 이뤄줄 계단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새롭게 등장한 현실은 나의 기억과 마음을 채워주는 풍경으로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이 글은 글 쓰는 여성들의 독립웹진 <2W 매거진> 11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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