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이면 엄마는 분주해진다. 뭔지 모를 맛있는 냄새가 코를 킁킁거리게 한다. 저녁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다 어떤 날은 엄마가 나를 급하게 찾는다. 그러곤 내 손에 냄비를 하나 건넨다. 텅 빈 냄비다. 무겁지 않은 걸 보면. 그 냄비를 내게 건넨다는 건 곧 심부름이 시작될 조짐을 알려주는 단서이다.
“엄마가 가게에 전화해뒀으니깐 가서 추어탕 좀 받아와. 조심히 다녀와.”라는 엄마의 가벼운 목소리 함께 대문 밖을 나서지만 내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걸 꼭 들고 가야 하는 거야 엄마?”라고 내뱉어 보지만 엄마 귀에 들리지도 않을 소리다.
어른이 된 지금 우리 집에서 추어탕 가게까지 거리를 생각해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세 블록 정도였으니 도보 10분 이내. 하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느끼는 그 거리는 어른의 짐작과 달리 훨씬 더 멀었다. 양손에 냄비를 들고 걷는 걸음이 그리 빠를 리도 없고. 멀고 가깝고 거리를 떠나 냄비를 들고 심부름하는 모양 자체가 싫었다.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은 창피함이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도 없는 감정이지만, 냄비를 들고 걷는 그 모습 자체가 숨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그 가게로 가는 길목은 또래들이 많이 다니는 동네 메인 길이나 다름없었다. 골목이라는 차선책이 있긴 했지만, 끊임없이 짖어대는 개 소리가 더 무서워 선택할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만날 새라 집까지 뛰어오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추어탕이 담긴 냄비를 들고 뛰는 건 묘기에 가까웠다. ‘아니 일회용 통에 담아주는데 우리 엄만 왜 냄비를 들여보내는 거지?’ 엄마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때 그 모습을 이해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엄마가 내 손에 들린 냄비에 국을 담았던 것처럼 가끔 국을 사 올 때 가방에 용기를 넣어 가는 나를 만나면서 오래전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용기를 챙기는 걸 깜박 잊을 때도 있지만, 장바구니만큼은 잊지 않는다. 심지어 여행을 갈 때도 챙긴다. 그리고 어디서든 장바구니를 꺼내 들면 훈장을 받은 사람처럼 그리 뿌듯할 수가 없다. 가방 속에도 넣어 다니지만, 자동차에도 한두 개 넣어뒀다. 남편 차 보조석에도 하나를 뒀는데 ‘그런 걸 왜 두나?’하고 생각하던 남편도 내가 사용하는 장바구니 모습에 익숙해졌는지 며칠 전 혼자 장을 봐 오면서 차에 둔 장바구니를 사용한 걸 보고 뿌듯했다. 은연중에 단련된 모습이 이렇게 실현되는구나 싶어 반가웠다. 오구-오구 하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 후 물건을 사고 검은 비닐에 담아주려고 하면 괜찮다고 손사래를 친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도 똑같이 하진 않겠지만, 나부터라도 비닐 사용량을 줄인다면 지구 환경이 몇천만 분의 일 정도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기대에 찬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그거라도 실천해야 지구에 덜 미안할 거 같다.
언제부터 환경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바다거북이 코에 꽂혀 있는 플라스틱 빨대를 본 후였던 거 같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바다거북이 몸에 플라스틱이라니! 플라스틱을 먹은 바다거북이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많을 테다. 물론 나 혼자 한다고 해서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서 그들을 보호할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는 건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나를, 환경을, 지구를 위하는 길 아닐까. 이런 행동을 하면서 거창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모인다면 뭐라도 변하지 않을까.
오래전 냄비를 들고 있던 모습을 창피하게 생각했던 내가 참 못났다. ‘그때 나는 뭣도 몰랐다.’라고 위안해보지만 못난 건 없어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건 찾아서 열심히 해야지.
2W매거진 9월호 주제가 '푸른 날들'이었다. 매년 9월 7일이 UN에서 지정한 '푸른 하늘의 날'이라는 점에서 정해진 주제였다. 시아버지 부고 때문에 이번 투고는 지나쳐야했지만, 생각해둔 소재가 있던 차에 몇 자 끄적거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