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발역인가 연신내역이었나, 3호선 어느 전철역이었다. 출근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 전철은 어느 전철역 플랫폼으로 들어섰고 문이 열었다. 고개는 떨구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들었고, 시선은 그 문 쪽을 향했다. 문이 열리니 부녀가 손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전철에 타려는 듯 아빠는 딸에게 먼저 길을 내주었다. 부럽다. 부러웠다. 그 모습이 마냥 부러워 그들이 내릴 때까지 내내 시선을 고정시켰다. 전철 창문 너머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듯 그 부녀의 모습은 만개한 꽃 같았다. 내내 눈빛과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힐끔힐끔 바라봤지만,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빠의 손을 잡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아빠를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잡은 두 손을 놓을 줄 몰랐고,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낯선 환경이 불안해 등하교 때마다 아빠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러면 좀 괜찮아지는 듯했다. 중·고등학교 학생이었을 땐 이전에 비해 손잡는 횟수가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했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돼서도 나는 아빠와 함께 움직일 때면 늘 손을 잡았다. 우리 부녀에게 손잡는 건 참 익숙한 일이었다.
길을 걸을 때도 아빠가 병상에 있을 때도 잡은 손은 놓을 줄 몰랐다. 아빠 손은 늘 온기가 돌았다. 언제부턴 인지 몰라도 손에 주름 늘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성인 남성의 평균치만 한 크기의 두툼한 손으로 작고 여린 내 손을 잡아줄 때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었다.
만감이 교차하던 날도 있었다. 결혼식 날 아빠 손을 잡고 신부 입장하던 순간, 아빠 손을 놓고 남편 손을 잡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내 감정도 감정이지만,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다. 다행인 건 그땐 각자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어 그 장갑 속에 마음을 숨길 수 있었다.
아빠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랬다. 계속되는 아빠의 고통을 멈춘 건 마약성 진통제였다. 약에 취해 잠들었던 아빠가 간간이 정신을 차릴 때면 귓가에 ‘아빠 사랑해’라고 외쳤다. 그 순간마다 아빠는 남은 온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는데, 이전과 달리 아빠는 남은 온 기운을 모으느라 몸을 바스르-르 떨고 있었고, 내 심장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렸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아빠와 손잡고 걷는 일이다. 일로 누군가 만나거나, 집안 행사에 종종 가다 보면 악수를 청하는 사람과 식구들이 많다. 한국에서 누군가 손을 맞잡는 것이 유럽 사람들의 포옹·볼 키스 같은 인사이겠지만 그 누구와도 아빠와 손을 마주 잡았을 때만큼 따뜻한 온기를 느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얼마 전 외삼촌이 서울에 오셨다. 그날은 직접 에스코트를 해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 도착 시간에 맞춰 서울역에 나갔다. 외삼촌은 엄마의 오빠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친구이기도 했고, 아빠가 돌아가신 전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당부한 사람이기도,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남은 우리를 보호자처럼 돌봐 준 식구이기도 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서울역 역사 안은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서류가방을 들고, 등산복을 입거나 멀끔한 양복 차림에 검은색, 노란색, 하얀색 머리카락 등을 가진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착 층에서 우르르 밀려 나오는 인파들 사이를 스캔하듯 살폈다. 외삼촌은 나를 먼저 발견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인사하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맞잡고 ‘식사는 하셨느냐?’, ‘힘들지 않았느냐?’, ‘잘 지내셨냐?’ 등 안부를 여쭸다.
안부를 나누는 동안 외삼촌과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고 그렇게 주차장까지 걸었다. 외삼촌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래전 아빠 손을 잡았을 때의 기억이 가물거렸다. 그래서였나? 그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그날 참 오랜만에 아빠 같은 외삼촌 손을 잡았고, 아빠 생각이 짙게 났다. 그저 맞잡은 손인데, 그 손길이 고단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 ‘손잡자’라고 하지 않는데도 쉽게 동·이성 친구와 손을 잘 잡는다. 근데, 부모님과 손잡는 건 어떤 편인가? 당연히 그게 처음이라면 손 내밀 용기도 나지 않고, 맞잡은 두 손이 어색할지도 모른다.
모든 일의 시작은 다 그런 법이니깐. 눈 딱 감고 삐-죽 삐-죽 먼저 손 내밀어 보자. 어쩌면, 당신의 부모님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회 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