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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막새 Mar 08. 2022

[서평]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망자의 뼈가 속삭일 뿐. 자기가 누구인지.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망자의 뼈가 속삭일 뿐. 자기가 누구인지.

“Dexter”

법의학자 행세를 하는 시리얼 킬러의 긴장을 잘 표현한 스릴러 미드의 최고봉.

드라마 설정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각양 각색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현장의 모습은 드라마지만 현장에 와있다는 느낌을 준다. 인기를 끌었던 다양한 스릴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상황과 다른 이유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덱스터의 직업적 시선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붉은 피.

희생자의 몸을 중심으로 바닥 벽 심지어 천장까지 독특한 패턴을 증인으로 앞서 등장한다.

현장을 수습한 후, 검시소로 이동된 희생자의 몸은 창백한 불빛이 조명으로 비추는 해부실에서 의사들의 직업적인 덤덤함 -때로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대화가 있기도 하다- 속에 잘게 나뉘어져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추적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그 중 뼈라는 조직은 아무래도 신체 부위 중 가장 단단하고 사건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는 대상이라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를 읽다 보면 드라미틱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지 꽤나 많은 단서들이 묻어 있고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뼈는 단단하고 그냥 플라스틱이나 쇳덩이처럼 우리의 골격을 유지하는 역할만 하지 않나 생각해보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신체의 조직으로 피가 흐르고 다양한 물질대사가 이루어지는 기관이다. 당연히 외부 충격에 강하게 저항하며 우리를 보호하지만 이 역시 연약한 신체에 포함되어 한 번 허물어지면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법의학자라는 직업은 자주 접해왔지만, “법의인류학(forensic anthropology)”은 생소한 분야이고,저자의 직업적 분류는 여기에 따른다.

인류학과 뼈대생물학을 적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학문으로 상당히 버티컬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의학은 의학과 법을 담당하는 의학의 특수 하위 분야이며, 사망의 원인을 조사하는 다소 광의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세탁기에서 발견된 뼈 조각 하나의 정체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저자는 이미 뼈 조각의 주인공은 이세상 사람이 아님은 알 수 있다. 우리도 글을 통해 깨닫는다. 뼈조각이 조각나 어디론 가 제 위치가 아닌 곳에 나뒹굴고 있다면 뼈가 보호라는 그 사람의 장기와 내부조직의 현재 상황은….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반란죄로 처형을 당한 영국의 “늙은 여우” 로바트 경 이야기다.

자코바이트 파에 가담하여 혁명을 도모했으나 발각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의 시신을 유족들이 몰래 런던 밖으로 탈취하여 가족묘에 이장했다는 주장의 진실을 캐는 과정이다.

어둡고 음습한 묘지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누구에게 든 유쾌한 시간은 아니겠지만, 방송을 타면서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고,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저자의 입에서 “그의 유골이 맞습니다.”가 흘러나오길 기다리는 긴장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가장 난처한 장면은 “늙은 여우”는 교수착장분지형 (죄인의 목을 메단 후, 장기를 꺼내 불에 태우고 머리를 자르고 몸은 사등분 하는 형)이라는 어마 무시한 형이었고 다행히 참수형으로 감형된다. 많은 시민들에게는 처형장면은 하나의 빅 쇼였고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수많은 참관객을 위해 임시 관중석을 만들어졌고 황당하게도 하필이면 그 중 하나가 무너져 내리며 9명이 죽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이고 이 장면을 본 처형 직전의 “늙은 여유”는 폭소를 터뜨렸다.

결과적으로 오래된 가족묘지에서 발견된 유골의 주인공은 20-30대의 여성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는 해프닝에 그쳤지만, 몇 백 년이나 지난 사람의 유골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과정은 과학과 끈질김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흥미 위주의 법의학 서적이 많이 있지만 이 책은 약간 어렵다.

흥미로운 사건이 범죄소설처럼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이는 대신, 철저히 과학자의 눈으로 현상과 결과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삽입되는 각 신체 부위의 설명은 의학 초보자를 위한 신체도감을 보는 느낌이라 신선하고 흥미를 끌지만 단어가 조금 어렵다. 해부학 백과사전이라도 옆에 두고 봐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 속에서 뼈에 묻어 있는 단서를 찾아가는 덤덤한 과정은 범죄의 습습한 그림자 속에서도 억울함과 진실을 찾고자 하는 저자와 과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잘 드러나 있다.


스릴러물을 좋아하거나 신비로운 인체의 색다른 관점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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