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노는기록 #41 , 하루종일 영화보기
다른 사람의 세계에 심취해 <나라면 ?> 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은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끈적하게까지 느껴지던 나의 세계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비상구가 된다.
학교 다니던 때만해도 그 비상구가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등 매체를 가리지 않았는데
요즈음엔 정신이 사방팔방으로 흐트르져있어
집에선 드라마는 커녕 영화도 한 번에 끝까지 보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는다.
물리적으로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진 불꺼진 그 공간이 좋다.
가장 최근에 내 세계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싶었을때는
퇴근 1시간전에 다음날부터 근무지가 바뀜을 통보받은 날이다.
야근수당도 없는 날 밤늦도록 짐 정리를 하다가 오랜만에 뚜껑이 열렸지만
때려치울 배짱은 커녕 인상 구길 배짱도 없는 나의 세계로부터 한뼘 떨어져있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뒤 가까운 독립영화관을 찾았다.
이 곳은 1개의 관에서 30분마다 새 영화가 시작하기 때문에
온종일 영화만 보고싶을때 가기에 좋은데,
서로 다른 영화들의 시작종료시간을 일일히 확인해 번거롭게 따로 시간표를 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내 취향이 아닌 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만
이런 날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고민없이 어떤 이야기든 몰입하고 싶기 때문이라 개의치 않았다.
내가 간 날은
<인플루엔자>, <홈리스>,<작은 새와 돼지씨>, <성적표의 김민영>, <둠둠>
이렇게 5개의 독립영화가 차례대로 상영되던 날이었는데
사회고발형 스릴러부터 가족에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생활 다큐멘터리까지
장르는 물론 주제도 각양각색이었다.
천차만별로 서로 다른 영화 속 주인공들의 입장을 헤아리다가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차라리 괜히 봤다 싶을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며
요며칠 일어난 일들에 매몰되었던 한가지 감정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질 수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늦은 저녁으로 떡튀순 1인분과 쿨피스를 샀다.
모니터 앞에 음식을 가득 펼쳐놓고 넷플릭스에 찜해놓고 안보던 영화 중 하나를 하나 틀었다.
오늘은 조금만 더 나로부터 멀어져보기로 했다.
tip)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 1편 :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