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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15. 2019

영화 <조커>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과 심리묘사가 뛰어난 연출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조커>




나보다 영화를 먼저 본 남편은 영화의 완성도를

극찬했고, 한 친구는 혼자서는 보지 말라고 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이웃 블로거님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셔서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너무 궁금했는데

어제 드디어 보았다.



                    


슬픈 삐에로 아서 플렉 (조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감스럽게도 별 감흥 없이 보았고

다만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감탄했달까.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주인공이든 누구든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될 때 더 크게 몰입이 되고

감동을 받는 것인데

이 영화에는 감정이입을 할 만한 존재가 없었고

그래서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입장에서 보게 되었다.



                            


웃음병을 앓고 있는 아서 (후에 조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조커의 탄생을 다룬 일종의 프리퀄로 보이는데

음... 장르영화답게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왜 예술영화처럼 찍어놨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정신병을 앓고 있으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아서 플렉이라는 가엾은 남자가

연쇄살인마 조커가 되기까지, 더 나아가

고담시의 시위대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심리적 변화과정을 내밀하게 묘사한다.

한마디로

한 범죄자의 탄생에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이 선행한다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자는 일차적인 피해자가 되고

그러한 피해의 결과로서 가해자가 되는 것인데

이 때문에 범죄 옹호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언뜻 그 개인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듯이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드 필립스 감독이 범죄자를 옹호하려는

의도로 영화를 찍었을리는 없고,

다만 악의 도시로서의 고담시라는 베트맨의 세계를

현실감 넘치게 묘사함으로써

조커라는 악당 캐릭터에게 악당으로서의 힘

(악행의 동기)을 강하게 부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




                                                                                        

그럼에도 주인공 아서 플렉 (후에 조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는 착하게 살고 싶었다.

착하게 살아야 했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친모가 아닌 걸로 밝혀지지만

아서의 엄마는 아서에게 늘 웃으라고 시켰다.

심지어 엄마는 그를 ‘해피’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그는 지독한 아동 학대를 당했고, 후에도

살아온 환경이 뭐 그렇게 웃을만큼

좋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웃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는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않았고)

정직한 감정표현을 하지 못했기에

누구하고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일찍이 고통을 호소하고, 아프다고 울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찌 되었을까?

느끼는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웃음 뒤로 억제하고 있다가 나중에

분노폭발로 드러낸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고만 있는 그는

얼마나 섬찟한가?



그의 가정환경으로 미루어보면

개그에 전혀 소질이 없음에도

그의 꿈이 코미디언인 것도 너무 이해가 간다.

아이는 두들겨맞고도 울지 않고 웃었을 거다.

엄마가 웃으라고 하니까...

그래야 엄마가 행복하고 또 그래야 맞지 않을테니까.

즉 웃음을 주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거고, 코미디언이 되어 큰 웃음을 주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부적절하게 웃는 그를 혐오하였다.



어쨌든 그는 아동 학대의 후유증으로

이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력이 있을만큼

뇌가 정상이 아니고,

나이는 많이 먹었는데 여전히 코미디언이 되지 못했고

돈벌이로 하고 있는 광대 알바도 힘들다.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자존감이 한없이 낮으니

피해의식 속에서 타인의 상처나 아픔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세계 속에서 오직 저 혼자만

가장 괴롭고 아프고 힘들다고 착각한다.



그는 살인 이후에 활력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일을 해낸 자로

그 동안 힘 없이 찌그러져 있던 자아의 재발견이랄까.

게다가 고담시의 군중들은 그 살인마를 칭송하며

부유층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영웅시하니

‘인정과 관심 (사랑)’을 받고 싶었던 그로서는

살인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이제 남은 길은 조커로 사는 것밖에...



                            





                                                                                             

사람을 죽이고 스스로를 정당화한 아서는

이제 자신에게 조커라는 캐릭터를 부여한다.

몇 번의 살인으로 그는 아주 힘이 세졌다.

뵈는 것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고.

광란의 춤을 추며 모두에게 그런 자신을 선보이려

길을 나선다.





                                                                

사실 이 영화에서 조커보다 나를 더 언잖게 한건

고담시의 마초적인 분위기와 문화이다.



지하철에 앉아있는 여자 승객에게 술 먹고

추태를 부리는 남자들은 부랑자들이 아니었다.

증권사에서 일하는 엘리트 청년들인데

퇴근 후 술을 좀 과하게 마시고

셋이 같이 있으니 무모하게 용감해진 거지.

정말이지 남자 새끼들이 술 쳐먹고 몰려다니면서

힘을 과시하는 꼴은 못 봐주겠다.

혼자 있을 때는 못하는 짓을 집단이 되면 한다.

아서가 걔들을 죽였을 때 (영화니까) 속이 시원했다.

아니 가만히 있는 여자에게

수작걸다가 여자가 모른 척 하니까

감자튀김을 던지면서 희롱하고...

근데 현실에 이런 남자애들은 진짜 있다.

죽을 죄는 아니지만 정말로 잡아다가

멍석말이를 해서 정신 차릴 때까지 두들겨 패주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 태형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놈들을 볼 때이다.



게다가 아서가 공연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에서도

여성을 비하하는 조크를 좋다고 읊어대고...

진짜 듣기 싫었다.



아서 본인도 같은 층에 사는 여자를 스토킹하고,

그 여자랑 자기가 사귄다고 착각했다가

그게 아니란 걸 깨닫고는 여자를 죽인다....



뭐 고담시라는 곳 자체가 워낙 쓰레기 같은 곳이니까,

영화 시작에서부터 도시에 쓰레기가 넘쳐난다고

뉴스에 나올 정도로

사회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썪었으니까

올바른 걸 기대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싫고 짜증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굳이 그렇게 마초적 타락상을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조커를 보면서 pc방 살인사건과

최근에 계부의 폭행으로 숨진 5세 남아가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는 법.

죄는 죄다.

현실에서는 범죄자가  반드시 댓가를 치루게 하고

허구에서는 좀 더 폭넓은 맥락을 이해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여성을 위협하는 이런 문화에

더 강력하게 맞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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