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낀 아름다운 북쪽길
꼴롬브레스 Colombres ~ 라 이슬라 La Isla. 73km.
꼴롬브레스에서 라 이슬라 까지는 보통 3일에 걸쳐 걷는다. 앞의 깐따브리아나 바스크 구간보다 길은 좀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스뚜리아스가 기본적으로 너른 산악지대를 끼고 있기에 역시 매일 20km가 넘는 거리를 걷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익숙해지긴 하는데 힘든 것에 대한 익숙함이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스뚜리아스의 첫 번째 구간인 꼴롬브레스에서 야네스까지는 초반엔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거의 끝에 가서 제법 힘든 산길을 넘어야 한다. 거의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며 아름다운 해안 주변의 풍경을 보며 걷노라면 잠시 육체의 힘듦과 쓸 곳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고민들을 잊을 수 있다.
뿌론강을 만날 때까지 길은 계속 바다를 오른쪽에 둔 애인처럼 떨어지지 않고 걷는다. 부엘바 마을을 지마면 해안에 불규칙한 바위로 이루어진 지대에 Bufones de Arenillas라는 곳을 만나게 되는데 바다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 독특한 해안지형이라고 한다. 'bupon'은 유입되는 파도로 인해 생성된 구멍에서 물이 쏟아지는 자연 현상을 의미한다고 하며, 바닷물과 함께 동물의 울음 같은 기묘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고.
20km쯤 왔을 때 안드린 Andrin이라는 작고 조용하고 깨끗해 보이는 동네 안쪽 공터가 있는 곳에 바르가 하나 열려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바르는 열려서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배를 이제 달래줄 수 있다. 가게 안에 들어가 진열되어(이미 만들어져서 랩으로 싸인) 있는 맛있어 보이(사실 맛있어 보이진 않았다. 부엌을 열기 전이라 만들어진것만 먹을 수 있다)는 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주문하고 가게 앞 빨간 테이블에 앉는다. "부아앙~~~~~~" 하는 굉음이 이어진다. 이런 시골 마을에 왜 이렇게 큰 자동차 엔진음 같은 것이 들릴까? 생각하며 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다시 출발. 바닷가 쪽으로 길이 이어지길래 따라갔다 다시 돌아온다. 길이 없다. 지도 앱을 켜 길을 확인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자동차 굉음이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로를 만났을 때 굉음의 주인공이 자동차 경주에 참가 중인 자동차들의 소리였음을 이제야 안다. 몇 명의 운영 요원이 주의를 준다. 이야~ 한국에서 살면서도 한 번도 못 본 도로 자동차 경기를 이런 시골에서 보게 되다니. 다양한 종류의 차들은 튜닝이 되어서 인근 산(언덕) 위로 이어진 오르막 길을 무섭게 내달렸다.
도로 곁을 따라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해변의 경치가 와우! 해변의 이름은 바요따.
아름다운 야네스,꾸에의 해변 경치를 한동안 보며 걷다 숲길로 접어들면 작은 성당을 하나 만나고 숲을 빠져나오면 길은 야네스의 작은 항구, 항구라고 해봐야 작은 레저 보트들이 정박된 곳으로 길이 이어진다.
야네스 역의 일부를 알베르게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알베르게 이름도 역시 에스따씨온 estación(기차역)이다. 사립 알베르게는 대부분 공립의 2배 이상의 요금(평균 15~25유로 정도) 받는데 시설은 보통은 공립보다 좋은 편. 가끔 사립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컨디션이 매우 좋은 공립 알베르게도 있는데, 대부분 리뉴얼을 한 곳이었다. 야네스라는 동네는 이름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느낀 그 분위기는 뭐랄까 좀 세련되었는데 막 현대적인 느낌은 아닌 그런... 아 설명하기 어렵다.
하루 또 푹 쉬었으니, 또 걷는다. 이번 구간은 야네스에서 삐녜레스까지 약 21km 정도. 거리가 짧으니 좀 밝아지는 느낌이 들 때 출발한다. 하지만 비가 내린다. 이러면 곤란한데... 일기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것으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수도원과 성당 Iglesia de San Salvador & Monasterio de San Salvador de Celoriu가 자리한 까마라스 해변에 도착한다. 이 해변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모래사장 가운데 물개모양의 귀여운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딱 해변에 물개 같은 느낌이다.
바다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비 내리는 차도를 따라가는 길은 'Barro'라는 마을을 지난다. 바다와 연결된 바로강 (Rio Barro) 하구의 넓은 간조의 모래사장과 만나고 그 뒤로 마을이 펼쳐지는데 뭐랄까 비 때문에 더 우울한 느낌이 드는 성당(공동묘지)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맑은 날이었다면 또 완전히 다른 느낌 아니었을까? 썰물 탓에 넓은 모래사장이 드러나 좀 너저분한 느낌이었지만 날이 화창하고 밀물 때였다면 물에 떠있는 듯한 모습의 아름다운 성당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당장은 굵어진 빗줄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아침도 못 먹고 나선 길에 해변의 바르는 비 때문인지 원래 그랬던 건지 오픈한 곳이 없다.몇 시간째 비를 맞으며 쉬지도 못하고 걸은 끝에 조용한 마을 중심에 자리한 Bar Sidrería Casa Raúl(바르 시드레리아 까사 라울;시드레리아 파는 바르 라울의 집)이 나를 반기는듯 한데 사실은 주인장이 반기는? 어쨌든 나는 휴식과 요기가 필요했기에 반갑게 찾아 들어갔다. 마을을 몇 개나 지나왔지만 비 오는 아침 문을 연 바르가 없던지라 이곳이 왜 이리 반갑던지. 보까디요,까페 꼰 레체,코카 콜라를 시켜 놓고 한참을 앉아 오전 내내 맞은 비구경을 한다. 빗속의 나와 비밖의 나는 참 많이 다르다.
누에바를 지나 다음 마을로 가는 길은 기찻길도 있고 정면 왼쪽에 제법 높고 웅장한 산도 보인다. 제일 좋은 것은 비가 잠시 멈췄다는 점이다.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건 서정적이고 낭만적이지만 비를 뚫고 걷는 순례자는 피곤하고 힘들 뿐이다.
삐녜레스에 알베르게가 있다는 정보는 확인했지만 어디에 붙어있는지 찾지 못하고 마을을 지나는데 언덕으로 이어지는 너른 초지 위에 성당과 건물이 하나 있어 앱을 켜 저게 뭔가 찾아봤다. 알베르게다!!! 아직 오픈 시간 전이긴 하지만 순례자 때문에 생겼을 길을 따라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비는 계속 내리고 아직 오픈전인 알베르게 처마 밑에 앉아 오스삐딸레로를 기다린다.
아스뚜리아스 두 번째 구간은 21km 거리에 길은 드물게 평이한 편이어서 비만 아니었다면 좀 더 걸어 리바데쎄야까지 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프랑스 길처럼 약 3km마다 마을이 있고, 마을마다 알베르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부득이 애매할 경우 끊어 갈 수밖에 없다.
하루 밤 편하게 쉬고 다시 어둠 속에 길을 나선다. 가끔 농가들이 나오지만 낮에도 사람 구경하기 힘든 시골길에서 인적을 느끼기란...
전반적으로 맑다고 생각했는데, 리바데세야 들어가기 전 다시 비가 뿌린다.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카메라를 집어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아 성가시다. 이놈의 비... 9월에 뭔 비가 이리 자주 내리나. 우기도 아니고 갈리시아도 아닌데... 불평을 하며 걷는데 리바데세야 입구에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건 아니겠지만 선명한 무지개가 하늘을 가른다.
리바데세야도 제법 규모가 있는 항구 도시의 느낌이다. 슈퍼마켓이며 바르, 문화센터, 여러 개의 성당, 그리고 길게 늘어진 백사장을 따라 조성된 주택과 숙박시설이 있어 여름 성수기에는 관광객으로 붐빌 듯하다. 강하구와 만나는 곳에 조성된 항구 근처의 흰색으로 칠해진 바르에 들어가 요기를 하며 첫 휴식을 취한다.
리바데세야를 지나 잠시 바다와 헤어졌던 길은, 다시 멀리 바다를 둔 마을 쪽으로 이어진다. 주택만 있는 작은 마을을 서너 개 지난 후 Berbes라는 동네에 바르 Casa melin이 있어 또 잠시 쉬어 가는데, 이번에는 포도주 한잔과 콜라를 한병 시켜 섞어 마셔 본다. 보통을 깔리모초를 시켜야겠지만 습관적으로 콜라를 시킨 후 갑자기 깔리모초를 만들어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레드와인도 한잔 시켰다. 와인과 콜라를 1:1 비율로 섞어 마시는걸 Kalimitxo 깔리모초라고 하는데 젊은이들이 주로 마신다고 한다. 마셔본바 두 번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식당이자 오스뗄인 건물 뒤쪽에 오레오(hórreo)를 응용해 만든 숙소 건물이 하나 더 있다. hórreo는 스페인 농가의 곡식창고를 말하는데 아스투리아스(Asturias) 지방은 이 오레오의 형태가 정방형에 사이즈도 상당히 커 창고라고 부를 만하다. 갈리시아로 넘어가면 이 오레오는 직사각형의 좁고 긴 형태로 바뀌는데 아스투리아스와 갈리시아가 만나는 지역에서는 혼용된 형태를 볼 수 있는 등 오레오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순례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예약 따위 하지 않고 오늘 머무를 라 이슬라 La Isla의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관리가 잘되어 보이는 해변과는 좀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나보고 예약했냐고 묻는다. 그런 걸 했을 리가 없잖아... 침대가 없단다. ㅠㅠ 급하게 핸드폰을 열어 다른 숙소를 알아보는데 다행인지 해변에서 Bar를 겸하고 있는 오스뗄을 찾아 들어갔다. 가격은 20유로지만 시설은 음... 참 별로였다. 그나마 식당을 겸하고 있어 닭가슴살로 만든 돈가스 비슷한 모습의 음식은 참으로 뻑뻑하고 양도 많아 음식을 남기는 초유의 사태가 생겼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음식을 남기는...
루틴이 하나 더 생겼다. 걷기 10km를 넘기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발바닥 통증(족저 근막염 같은 느낌) 때문에 발바닥에 소염 진통제를 듬뿍 발라 발바닥 마사지...^^. 집에서 가지고 온 맨소래담 로션이 다 떨어져 볼타돌 포르테를 20유로에 사서 쓰고 있다. 약의 효과인지 마사지의 효과인지 휴식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다시 일어나서 걸을 때는 딱히 통증이 없는 것도 참 희한하다.
약 27km 정도를 걸었고 오르막이 가끔 있지만 고도차가 크지 않아 걷기 힘들지 않은 코스인데, 경치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