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고 2차 가해 기간까지 10개월을 버텼다. 대체로 모든 직장에서 윗사람들에게 평판이 나쁘지 않았던 나는 19년에 처음 생긴 직장 내 괴롭힘 법이 나랑은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매해 괴롭히는 여직원들이 있었던 사람이 우리 팀에 팀장으로 오게 되었고 내 사수를 대놓고 괴롭히던 그 사람의 타깃이 어느 순간 나로 바뀌어있었다.
뜨거운 맛, 안 궁금해 honey~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맛, 바로 그 맛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된 팀장이 나를 괴롭힌 이유이다.
내 자리 옆에 있던 작은 프린터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서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말한 것, 우편집배원 분에게 다른 직원의 개인 등기를 나에게 주지 말고 탕비실에 놔달라고 말한 것(이를 '등기사화'라고 칭하자)이다.
팀장은 나를 혼낼 때 항상 내 사수를 함께 불렀는데 그게 사람을 참 미치게 만들었고, 당연히 혼낼 때 내 표정은 좋을 수가 없었다. '등기 사화'가 있은 후 팀장은 본격적으로 나를 괴롭히고 내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걔는 뜨거운 맛을 봐야 돼, 그만두게 만들 거야”라는 등 내 욕을 하도 살벌하게 해서 그 욕을 듣던 사수가 내가 팀장님 딸뻘이라고 하자 “우리 딸은 안 그래”라는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셨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은 들어봤는데 뜨거운 맛은 처음이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 궁금한 바로 그 맛을 보게 된다. 팀에서 중립 포지션을 유지하던 젊은 남직원들까지 왜 저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볼 정도로 나를 다그치고 내 실수를 쥐 잡듯이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여직원 화장실에서 우리 회사 직원이 뻔히 지나가는데도 시청 공무원과 내 욕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퇴사를 결심했다.
당시 나는 너무 수치스럽고 창피해서 정말 이런 말을 입에 담는것조차 싫지만 딱 죽고 싶었다. 내가 그때 믿고 의지했던 사수에게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놓았고 그분은 내가 걱정되셨기에 그만두지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우리 회사는 매년 기관장과 면담을 했는데 그때 기관장에게 말을 해보자는 거였다. 그래서 사수가 인사 업무를 하던 차장에게 기관장과의 면담이 언제냐고 물어봤고 그걸 팀장에게 전했는지 팀장이 사수와 나를 대하는 행동이 달라졌다.
분위기랑 눈빛은 싸늘한 그대로였지만 말을 걸지 않기 시작한 거다.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또 4월에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조금만 참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인사이동이 당분간 없을 예정이라는 말이 돌았다. 우리는 더 참을 수 없었고 기관장실에 신고서를 작성해서 들어갔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부서가 우리 팀이었는데 팀의 팀장을 신고하려면 기관장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기관장에게 요구한 건 고충처리심의위원회를 여는 거였는데 당시 2년이 되면 자동으로 대리 승진을 하는 상황에서 내가 이 신고건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을 간곡히 원한다고 했다. 그러자 기관장은 "고충처리심의위원회가 열려 조사를 받다보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뀔 수도 있고 승진을 앞두고 좀 그렇지 않냐..?" 라는 지금 생각해도 아리송한 말을 한다. 그 상황에서 주장을 강하게 내세울 수 없었던 우리는 신고인인 '우리'의 부서이동만을 약속받고 기관장실을 나왔다. 그것도 나름대로 큰 소득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만족하려고 했다.
그런데 참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나오자마자 2시간 뒤쯤 기관장이 팀장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그 후 팀장은 나름대로 조심하는 시늉을 보였으나, 우리가 들으라는 듯이 괴롭힘 행위자인 팀장과 같은 팀 차장들 입에서 “이러다가 나 또 신고당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몇차례 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