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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그란 Jan 11. 2022

공공기관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면 생기는 일

신(神이 아닌 辛)의 직장, 공공기관 3탄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신고자들인 우리가 팀을 옮겼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차장이 다른 직원에게 우리를 두고 '또라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조직이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는 말들이 친하지 않은 사이여도 돌고 돌아서 내 귀에 들어오게 된다.


 우리도 우리를 지켜주는 수단이 필요했고 그게 노동조합이었다. 또다시 우리 같은 피해자가 안 생기도록, 조직 내 부당한 지시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구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있다면 반드시 회사 내 노동조합을 활용하길 바란다. 만약에 노동조합이 없다면 나는 2-3명 만이라도 모아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길 반드시 추천한다. 노동조합은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위원장은 평소에 바른 소리를 나서서 해주신 여자 차장님이 우리의 사정을 듣고 하시게 되었고 조합원 4명으로 시작해 금세 50명 조직에 절반 이상이 가입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해자와 그 주변에서 2차 가해가 있었다. 몇몇 남자 차장들이 노동조합을 탈퇴하게 되었다. 탈퇴 이유는 노동조합 기구를 만든 이유가 그 팀장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서이고 조직이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었고 이는 절대 공격 수단이 아닌, 우리가 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 우리한테는 생명줄 같은 구명조끼였다.


 우리가 괴롭힘을 당할 때 가해자를 방관하고 우리는 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참고 고통 속에 사는 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직을 시끄럽지 않고 평화롭게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해행위를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노동조합이 생겼기 때문에 정식 신고를 하기로 했다. 결국 고충심의위원회가 열렸고 우리의 사건에 대해서 직장 내 괴롭힘 판정을 받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바로 잡힐 것이라 또 순수하게 착각했다.


 우리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약자를 대변해주셨던 여자 차장님이신 노조위원장이 3년 전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로 남자차장이 피해자가 되어 성희롱, 성폭력 사건으로 익명 신고를 역으로 당했다.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느낀 건 내가 바로 서있는 것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울어져 있던 땅이었고, 내가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지독한 멀미일 뿐이다. 언젠가 이 기울어진 땅 끝에서 나는 절벽으로 추락할 것이 뻔하다.



 12월부터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잠을 자기 위해 누우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명 증세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정신과에는 정말 가야 될 사람이 가지 않아서 상처받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뉴스에 나오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을 보면 남일 같지가 않다. 그 심정이 너무 이해가 간다. 21년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 19명 중 절반 이상이 공공기관 종사자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가해자에게 자살을 당한 것이다. 살해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죽음을 선택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용기가 이 회사를 계속 다니면 생길 것 같았다.


 재택근무를 마친 뒤 출근한 회사에서, 나를 '또라이'라고 했던 H차장에게서 (그 분 말에 의하면 '아는 후배'를 지칭했다고 한다.) 나를 겨냥하는듯이 "싸가지가 없네" 라는 소리를 사무실에서 듣자 나는 폭주 기관차처럼 흥분하고 H차장에게 따졌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올 정도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큰 상처를 받긴 했지만 마냥 잃기만 한건 아니다. 원하는 대로 부서를 옮겼고 나의 신고로 인해서 조직 내 잠재적 가해자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눈치를 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또 우리 조직에 노동조합이 생겨 언제든 소수의 의견을 대변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국에 나는 회사와의 싸움에서 위자료 격의 재택근무와 병가를 얻어냈다.


 신(辛)의 직장에서 매운맛을 보았지만, 긴긴 투쟁의 결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나 자신(自身)을 회복할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것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공정한 사회다. 내가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는 정당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노력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는 사회이다. 나는 공정을 구(求)했지만 얻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은 구(救)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5년을 그토록 원했던 공공기관을 3년 만에 그만두고자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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