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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그란 Feb 27. 2022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자신(自身)을 되찾는 시간 2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회초년생이 또다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에 달린 유튜브 댓글 중 누군가 공사현장에서 일할 때 봤다는 현수막의 내용을 적은 것이 인상 깊었다.


"우리 현장은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 말은 안전장치를 착용하고 근무하는 공사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한 공격들에 아무런 보호 도구 없이 근무해야 하는 사무현장에서도 적용되는 말 같다.






 참 많은 사회초년생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생을 마감했다. 최종 합격을 한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딸, 아들이었을 그들 중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가 유독 많은 이유는 왜 일까 생각해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겪었던 다음과 같은 조직의 특징들이 떠올랐다.


 첫째, 고인물들의 대 환장 파티, 우리 회사는 시 산하기관인데 시청에 주무부서 과장님의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 회사 팀장님들은 새벽부터 동원되어서 운구를 했다. 공직사회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들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 일 수 있지만 고인물들의 대환장 파티는 공직사회에서 특히 일어나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본인들도 그런 부당함을 견뎠기 때문에 그 부하직원들 역시 그걸 견뎌야 하고 참지 못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이 되곤 한다.


 둘째, 폭탄 돌리기의 끝판왕, 보통 공무원이나 공기업은 주변에서 사기업에 비해 업무강도가 쉽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워라밸만큼은 깔 수 없다고 누누이 말하곤 했다. 하지만 종종 막내들은 10년을 조직에서 미루고 미루던 폭탄을 떠맡게 된다. 여기서 말한 폭탄은 자격요건이 있다. 반드시 일을 해도 절대 표시는 안 나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일이어야만 한다. 그게 주임, 대리급 혹은 막내 공무원이 맡는 주 업무가 된다. 근무 성과를 평가할 때 제출하는 자기 기술서를 작성할 때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 정도이면서 세부 기술을 할 때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나조차 몰라야만 한다.


 셋째 주변의 인식이다. 공기업, 공무원처럼 좋은 직장도 못 버티면 다른 곳에선 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세 곳의 직장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어느 곳이나 힘든 것은 사실이다. 다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다양한데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도 다 다르다. 다른 직장, 다른 직업도 분명히 힘들겠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스트레스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종사자들은 여기서도 버티지 못하면 다른 곳에선 더 버틸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몸에 신호가 왔을 때 떠나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다. 이 세상에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까지 해야 될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신체가 부러지거나 피가 나면 눈에 바로 보이지만 마음이 다쳤을 때는 바로 확인할 수가 없다. 커뮤니티식 사회생활로 '도비 is free'를 회사 배경화면에 해두고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을 카톡방에 띄우고 무작정 퇴사를 하란 뜻은 절대 아니다. 내 마음이 내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나를 살리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자살 뉴스를 보고 "아, 좋겠다"라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감히 말한다. 당신은 지금 외상으로 치면 응급수술이 필요한 심각한 중증환자이다. 제발 상담을 받았으면 좋겠다. 손을 조금만 베어도 쓰라린데 마음의 상처에는 사람들이 유독 무감각한 것 같다. 작은 상처도 방치하면 곪고 결국 터진다.


 부조리와 비효율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자신을 칭찬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떠났으면 좋겠다. 죽기까지 결심을 했던 나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퇴사를 결심하되 조직이 내게 주는 모든 혜택은 누리고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재택근무와 병가를 통해 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고 그 일을 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타임지 기자를 거쳐 세계적인 여행작가가 된 피코아이어는 그만두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뭔가가 당신을 수긍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뭔가에 수긍할 수 없어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낭떠러지가 눈앞에 있는데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수긍할 수 없는 상태에서 퇴사라는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더 나은 나를 위해, 내 소중한 인생을 지키기 위해서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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