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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그란 Mar 25. 2022

네가 주인공이라서 그래

자신(自身)을 되찾는 시간 3탄

직장에서 사수가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만 생길까요?,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요?"라고 내 인생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때 그분이 나에게 해주신 말씀은 "그란, 네가 주인공이라서 그래."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흘러가는 인생을 항상  위주생각하고 특별한 인생을 살길 바라 왔으면서 정작 주인공이 느끼는 시련과 고난은 피하길 원했다. 쉽고 빠른 길만 찾으려고 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매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완성된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시련이 없는 주인공의 인생은 지루하고 시시한 영화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나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우발적(=W팀장의 성씨를 따와서 팀장 발(發) 퇴사를 의미함) 퇴사를 하게 만든 W팀장은 한동안 잠잠하더니 본성을 숨기지 못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은은한 괴롭힘을 시전 중이다. 사직서를 내면서 인사업무를 하는 B차장에게 부탁했던 이직확인서와 실업급여 퇴사 사유는 한번에 내가 원하는 대로 써주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내가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됐는지 상기시켜주는 한결같은 회사였다. 요즘에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B급 감성이라고  욕먹는다. 


 어쩌면 누군가를 괴롭히는 건 빌런이 할 수 있는 가한결같으면서도 쉬운 능력 일지도 모른다. 내가 W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자 S차장은 나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주고 계셨던 노조위원장에게 W팀장 좀 그만 괴롭히라고 했다. 괴롭힘은 참 상대적이면서 빌런도 쉽게 가져다 쓰면서 본인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단어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이 시끄러워지는 게 싫다고 노조를 탈퇴한 남자인 S차장은 그 여자 노조위원장을 3년 전 사적인 술자리에서 했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성희롱 신고를 했다.)


 히어로몰 영화를 봐도 주인공이 그 편에 빌런을 물리쳐도  또 다른 빌런이 다음 편에서 튀어나온다. 영화와 현실이 비슷한 은 끊임없이 빌런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와 다른 점은 현실에선 인과응보는 기대하기 어렵고 가해자는 보호해주면서 목소리를 낸 피해자가 그곳을 떠나는 결말이 많다. 


 미투 운동이 처음 시작됐을 때 우리 회사 기관장은 여직원들에게 선 넘는 발언을 한 뒤 "이런 것도 미투에 걸리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밥먹듯이 했다. 나는 묵직한 돌이 내 가슴에 앉은 것처럼 답답했다. 억울하게 트집 잡혔다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가해자들에게 이입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와 피해자에 대한 배려 없음이 나를 화나게 했다. 한 번도 피해자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저런 말을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는 걸까? 티비에서 연예인들이 본인들끼리 장난으로 괴롭힌 뒤 "이거 완전 직장 내 괴롭힘이잖아"라고 말하는 것도 요즘엔 불편하다. 맞다, 나는 프로 불편러다.  나는 피해자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피해자에 이입할 수밖에 없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들이 꼭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본인들이 한만큼 돌려받길 바랐는데 너무 잘 사는 것 같아서 "하나님, 얼마나 더 큰 벌을 내리시려고 준비하시는 건가요...?"라는 철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에서 학교에서 체벌을 일삼는 선생님께 자신의 신념을 말하다가 눈밖에 나게 되고 신념을 굽힐 수 없어서 끝내 자퇴를 결심한 고등학생 친구에게 어머니가 해주신 말이 인상 깊었다. "ㅇㅇ아, 때로는 휘어질 줄도 알아야 해" 결국 그 친구는 자퇴를 하지만 부러져 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휘어질 줄 모르고 언제나 꼿꼿하게 버티다 장렬하게 부러진다. 나에게 찾아온 모든 시련들과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어른스럽게 대처하는 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 꿈꾸던 서른 살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내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이었는데 여전히 타인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시간들과 부러진 경험들이 결국엔 나를 빚어가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들을 버티고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수 김창완이 라디오에서 쪽지로 청취자에게 상담을 해준 내용이다.



 나의 일상이 비록 어설프고 삐뚤빼뚤하더라도 내가 살아낸  나날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날은 조금 작고, 어떤 날을 유난히 크고, 어떤 날은 찌그러졌을지라도 다 같은 동그라미들이다.


 나와 같은 괴롭힘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살아냈으면 좋겠다. 매일을 살아낼 때 마음속에 기억했으면 하는 말이다.


이 모든 시련과 역경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까닭은 "네가 주인공이라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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