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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그란 Jan 25. 2022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자신(自身)을 되찾는 시간 1탄

 21년 2월, 직장내 괴롭힘이 시작된 날로부터 22년 2월을 앞두고 있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쏟아낸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채우는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 좋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서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다. 또, 공공기관이라는 목적만을 가지고 달려온 나에게서 결승점이 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것, 저것 다양한 직업들을 찾아봤다. 




 프린세스메이커 마냥 나를 NPC처럼 길러주고 있는 동기들한테 어떤 날에는 '나 코딩 강사 할래요',라고 말했다가 다음날엔 '디지털 튜터 (=시니어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알려주는 멘토)할래요',라고 내가 되고자 하는 직업을 쥐어짜 내면서 하나씩 반려당하고 재기안 하는 중이다. 


 그리고 곧 백수에게 후덜덜한 금액인 심리검사를 받았다. 상담센터 소장님이 기본상식 검사를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국보 1호는? 사군자의 종류는? 이탈리아의 수도는?' 이런 질문들을 하셨다.

 동기한테 이런 질문을 받았다니까 동기가 전혀 답변을 못하겠다고 자기도 혹시 우울증인 거 아니냐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우울증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주변에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내가 치료를 받으러 간 정신과만 해도 어떤 시간에 가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가급적 얼굴을 보는 게 실례인 줄 알아서 안 보려고 노력하지만 좇소기업 같은 곳을 다니다 보니 남일에만 관심이 많아져가지고는 음침하게 살펴 본 얼굴들은 정말로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아무튼 무수한 우울증 환자 중 1인인 나는 심리상담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결과는 평균 점수인 10점을 기준으로 이상, 이하로 나온다고 했다. 나는 '이해도' 점수에서 13점이 나왔는데 평균보다 한참 높은 점수라고 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높고 공감도 잘하는데 그만큼 상대방을 무척 신경 쓰고 그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 의미부여를 한다고 했다. 


 내가 진단서를 첨부하여 병가 결재를 올리자 우리 부서 기록물에 있는 내 병가 신청서를 보고 우리 팀에 다른 팀원이 '이런 걸로도 병가를 올리네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 조치로 재택근무 한 기간에 나랑 싸웠다는 감사 업무를 하고 있는 H차장은 내가 업무를 제대로 했는지를 우리 팀 팀장님한테 따지듯이 물었다고 한다. 재택 기간 중에도, 또 병가를 쓰면서도 팀장님께 몇 번 연락이 오면서까지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제출한 결과보고서는 2차 가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S차장이 자신의 실적인것 마냥 나를 CC(참조)해서 나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아, 이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가, 


단순히 사는 게 참 어려운 세상이다.


 이럴 땐 상상력이 풍부한 게 괴롭기도 하다. 똑같은 사건도 다른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할 일을 나는 아주 복잡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력만큼이나 눈물도 참 많은 사람이다. 첫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국장님의 아픔을 듣고 담담하게 말하시는 그분 앞에서 도리어 내가 엉엉 울었다. 13점의 이해도 점수는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타인의 아픔을 헤아려주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아픔을 견디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내 아픔이 이랬기 때문에 당신의 아픔도 견딜 수 있다, 참아낼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 없는 행동이다. 그저 묵묵히 곁에서 기다려 주는것, 내가 걸어왔던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글이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이 길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먼저 마음으로 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작은 믿음 때문이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의미 부여하지 않고 길을 정확히 보는 것, 또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눈물로, 또다시 마음으로 길을 내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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