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살 터울의 남동생이 하나 있다
나이차가 나는 남자 동생이 있는 형이라면 공감할 지도 모르겠는데
요즘 시대였다면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 했어도 벌써 했을만큼 어릴 때 무자비하게 많이 때렸다
이유는 없다
눈에 알짱거리면 패고 책상이 지저분하면 패고 밥 먹다가 흘리면 패고
그냥 존재 자체가 거슬린단 이유로 손이 올라갔다
이제와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주 양육자의 장기 부재와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힘없고 만만한 그리고 제일 가까이 있는 상대에게 분풀이를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근데 아마 위 이유가 아니었어도 안 때리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학업에 점점 소홀해지면서부터 연예인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멋내기에 빠져들었고 이성에 눈을 뜨면서 동생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는데
아마 이때부터 동생은 나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장기 시절의 동생은 혹부리영감의 혹처럼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존재였다
나 자신부터 자존감이 없는데 동생까지 있다는 사실은 그걸 더 부각 시키는 것 같았고
감당할 수도 없애버릴 수도 없는 진짜 말 그대로 혹 같은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먼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방황의 늪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런 나와 달리 동생은 혼자 꿋꿋하게 잘 자라 어느새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모자란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프집 서빙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나는 학력 경력 없고 끈기와 인내심도 없어 가는 직장 가는 아르바이트 자리마다 짤리기 수차례,
그리고 오랜 연인과도 이별하고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한동안 히키코모리처럼 살았는데
자취방 월세 내는 날은 참 빨리도 다가오더라
월세는 막일을 며칠하면 감당할 수 있었지만 막일을 나가려면 밥은 주니 차비와 담뱃값은 있어야 했는데
몇 달을 집구석에 쳐박혀 있다보니 지갑이고 통장이고 그 흔한 방구석에 동전 몇 푼도 하나 없었다
남은 건 해지일이 얼마 남지 않은 휴대전화 하나 뿐,
핸드폰 연락처에 있는 친구들에게 하나둘 전화를 걸어봤다
평생 의리를 외치던 친구들도 이런 나의 사정을 아는지 모두 외면 했고
무슨 생각인지 가족 그룹에 있던 동생에게 전활 걸었다
의미 없는 안부 인사 뒤에 며칠 뒤 돈이 들어오는데 그 때까지 있을 생활비 3만원이 필요하다고 거짓말 했고
사장한테 바로 가불할테니 당장 일하는 가게로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나서도 어린 동생에게 무슨 짓인지 한참을 갈까말까 생각했지만 사실 갈때도 돈이 없어 지하철 개찰구를 몰래 들어갈 정도여서
선택지는 없었다
가게에 다다르고 도착했단 메세지를 남기고 몇 십분이 흘렀을까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오던 동생이 나에게 불쑥 내민 건 두툼한 흰봉투였고
그 안에는 다음달 월급의 전부가 들어있었다
십년도 더 지난 그날을 지금도 또렷히 기억한다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번화가 어느 호프집 앞에서 하염없이 소리내어 펑펑 울던 한 사내와
그를 멀뚱히 지켜보던 한 소년의 잔상은 아직도 내 머릿속 한 구석에 강렬히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을 이유없이 싫어하고 미워했던 형을,
그저 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포용하고 감내한 동생이 너무 안타까웠고
또 그런 동생의 맘을 몰랐던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해서 그날 눈물로 사죄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동생을 두번 다시 미워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