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경험 #문제해결력
타임루프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는 일이기에 흥미로운 설정이다. 만화나 영화에서 콘텐츠의 주요 설정으로 활용하는 게 많아져서 이제는 ‘타임루프물’이라고 불리며 하나의 장르로 여겨지기도 한다. 타임루프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해봐야 할 게임이 있다. 그동안은 봤던 만화나 영화의 타임루프는 그냥 구경하는 입장이었다면 게임에서는 타임루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게임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 ‘주인공=나’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생기면 한 번 해보자. 겉핥기가 아닌 '진짜'를 경험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름 : TWELVE MINUTES (트웰브 미닛) / 청소년 이용불가 / 2021년 8월 20일 최초 출시
장르 :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 인터랙티브 스릴러
개발자 : LUIS ANTONIO / 배급사 : ANNAPURNA INTERACTIVE
설명 :
TWELVE MINUTES는 간단한 클릭과 드래그 액션으로 플레이 가능한 실시간 탑다운 인터랙티브 스릴러 게임입니다. 제임스 매커보이, 데이지 리들리, 윌럼 더포가 성우로 출연합니다.
아내와 로맨틱한 저녁을 보낼 계획이었던 어느 날, 집으로 밀고 들어온 경찰은 당신의 아내가 살인마라고 주장하며 당신을 때려눕힙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현관을 열었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 12분 동안 반복되는 시간 루프에 갇힌 채 같은 공포를 겪고 또 겪어야 합니다... 이 루프에서 탈출할 방법은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바꾸는 것뿐입니다.
TWELVE MINUTES는 영화 샤이닝의 초현실적 긴장감과 영화 이창의 갑갑한 공포감, 그리고 영화 메멘토의 파편적 구성을 하나로 묶은 게임입니다.
- 시놉시스
인디게임이다. 미대를 졸업하고 게임 아티스트로 일하던 LUIS ANTONIO는 타임루프 게임에 대한 구상을 했다. 게임 아티스트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구상을 구체화시켜 오다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배워 게임을 만들었다. 처음 구상을 하고 10년이 지나서야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
탑뷰(위에서 본 시점) 게임으로, 주인공(남자)이 되어 타임루프를 탈출하는 게임이다. 커서를 이동시켜 클릭하는 간단한 조작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타임루프의 주기는 12분으로, 시간이 다 되면 처음 시작 시점으로 돌아간다. 위 사진에 보이는 거실, 방 1개 그리고 화장실을 드나들 수 있다. 타임루프 시간이 짧다 보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게 만들지 않았다. 조작은 간단하지만 반복되는 일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열심히 관찰하고 눌러보고 대화해야 한다. 12분이 금세 지나간다. 마치 추리, 퍼즐 게임하는 느낌이다. 개발자는 플레이 타임이 8시간 정도라고 말한다. 산술적으로 타임루프를 40번 이상 해야 한다. 타임루프의 경험이 과연 흥미진진할까, 아니면 지루할까.
"타임루프 해봤니? 나는 해봤다."
메타크리틱 평점 :
60~70점대 점수로, 좋은 평점이라고 하긴 어렵다. 대체로 게임 플레이의 신선함과 몰입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반복 요소와 스토리에 대해는 낮은 점수를 줬다. 이 점수의 게임이라면 특별히 취향인 경우가 아니면 굳이 추천할만큼은 아니다. 나는 이 게임만이 가지고 있는 '진짜' 타임루프의 경험 때문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 새로운 자극은 새로운 반응을 일으킨다 : 진짜 경험(스킵 없는 타임루프)의 힘
현실의 시간에서의 12분이 계속 반복된다. 반복 중에 뭔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지점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게 흥미롭지만,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계속 같은 상황과 대사를 반복해야 한다. 이거 짜증 난다. 타임루프가 이런 건지 몰랐다. 타임루프 장르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떠올려 보니 '20회 반복' 이런 식으로 반복 상황을 넘기며 지루하지 않게 연출을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서는 '게임적 허용'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1분 만에 나무를 자르고 나룻배를 만드는 게 현실적이지 않지만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이래야 한다. 기관총을 장전하는데 30초가 걸리면 답답해서 총 쏘는 게임 못할 거다. 그런데 이 게임의 제작자는 12분이 반복되게 세팅했다. 심지어 같은 상황과 대화를 또 봐야 한다. 많은 게이머들이 이 지점을 비판한다.
스킵을 왜 안넣은거야
분기 한번 보는데 몇분씩 처걸리면
아무리 재미있어도 어떻게 그걸 참고 봅니까
개발자 코딩 빌드 한번할때 12분 걸리게 해봐야 스킵 넣어줄듯
스팀에서 이 게임에 대한 유용한 평가 1위로 뽑힌 글이다. 게임해보면 정말 공감이 간다. 그런데 동시에 '만약 스킵이 있었으면 이걸 타임루프를 경험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는 '나=관객'으로, 12분짜리 루프를 5번 이상 반복하면 분명 지루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나'인 게임에서는 루프 한 번, 한 번이 각기 다른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스킵이 없는 게 답답하지만 그게 '진짜' 타임루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대화를 빠르게 넘기는 버튼은 있기에 아주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지루함을 느끼는 정도는 다를 것이다) 제작자 인터뷰를 보면, 다시 반복하는 것을 스트레스로 받지 말고 다음 계획을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쓰길 기대하고 있다.
콘텐츠를 고를 때 보통은 사람들의 리뷰나 평점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거기에 개인적인 선호도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예술성(새로움)' 때문에 꼭 한 번은 경험해 봐야 하는 콘텐츠가 있다. 나는 이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타임루프 장르나 반복의 요소를 사용한 전개는 종종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만큼 '진짜'의 타임루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점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자극이 주는 축복은, 익숙한 자극이라면 반응하지 않았을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랬다.
게임을 시작해서 끝나기까지 2주가 걸렸다. 정확한 횟수는 기억 안 나지만 50번 정도 루프를 반복하고 게임을 마쳤다. 이것은 나에게 최초의 타임 루프 경험이었다. 그런데 어색하지가 않았다. '왜 어색하지 않지?' 이상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삶 자체가 1주일 주기의 타임루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정신없이 일하고 쉬고,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게임을 하고 쉬고. 지난주에도, 지난달에도 비슷하게 반복했고 아마도 다음 주, 다음 달에도 반복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3년 이후의 먼 미래는 잘 그려지지 않아 애써 계획을 세워두려 하지는 않는다. 올 해의 목표와 내년의 그림 정도를 가지고 살고 있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데 집중하는 것이 내 삶의 큰 원동력이다. 다만 5년 후, 10년 후의 희망과 상상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를 향해 전진하기도 후퇴하기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해야 일주일, 한 달을 타임루프처럼 느끼지 않을 것 같다.
2. 어렵지만 누구나 해결할 수 있는 난이도 : 문제해결이 주는 쾌감
이 게임은 관찰과 시도 통해 게임 진행의 단서를 발견해 내야 한다. 그리고 발견한 단서들을 적절한 순서로 진행해야 한다. 특별한 힌트는 없다. 알아서 찾아야 한다. 이거 쉽지 않다. 6~8시간을 투입해야 풀 수 있는 아주 어려운 문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여러 차례 막히는 순간이 온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게 무엇인지, 빠뜨린 게 무엇인지, 순서가 적절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누구나 해결할 수 있다. 문제해결을 위한 경우의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상호작용 가능한 모든 장치를 활용해 보고, 모든 대화 선택지를 하다 보면 풀리는 지점이 있다.
교육적으로 배움과 성장에 도움을 주는 좋은 과제는 난이도가 적절해야 한다. 너무 쉬워서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거나 너무 어려워서 자존감을 깎아내리면 안 된다. 이 과제의 난이도는 적절하다. 충분히 어렵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쓴다면 누구나 풀 수 있다. 결국 모든 문제를 풀게 됐을 때 해냈다는 쾌감이 올라온다. 조금 허무한 감정과 함께.
- 반복되는 대사와 진행
반복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깐 타임루프다. 머리로는 알지만 계속 같은 행동을 해야 하고 같은 대사를 봐야 하는 점이 짜증 날 수 있다.
- 아쉬운 스토리 전개와 엔딩
플레이어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스토리 전개와 엔딩이 나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쉽다고 표현한 이유는 자극적인 내용이 게임의 장점을 가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추천할 수도 없게 됐다.
- 공략을 보지 말자
반복되는 타임루프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재미가 핵심인 게임이다. 어렵고 답답하다고 공략을 보는 순간 스포를 당하는 거나 다름없다.
재미 ★★★★☆
+ 몰입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 반복되는 대사와 진행
교육적 ★★★☆☆
+ 한 번은 꼭 해볼 만한 '진짜' 타임루프의 경험
- 교육적이지 않은 스토리
접근성 ★★★★★
+ PC, 콘솔, 모바일(넷플릭스 회원만 가능) 모든 플랫폼에서 가능한 게임
+ 포인트 앤 클릭으로 손쉬운 조작
<어떤 경험에 대한 선호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얼마나 될까?>
교육일을 하며 항상 고민했던 질문이다. 1시간 체험을 하고 "저는 이거랑은 안 맞아요"라고 판단을 하는 학생이 있을 때 그 판단을 존중해야 할지, 아니면 더 해봐야 한다고 할지 고민된다. 정해진 매뉴얼은 없다. 사람 따라, 상황 따라, 경험 따라 다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다음에 같은 것을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저 이거 해봤는데, 저랑 안 맞아서 안 할래요"라고 할 때다. 이게 무엇이든지 1시간 만에 선택지를 없애버릴 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든 드라마든 게임이든 킬링타임용 콘텐츠를 고르는 것은 그래도 상관없다. 그야말로 기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라면 좀 더 시간과 노력을 해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특정 게임을 할지 말지의 판단 근거는 해당 게임에 있었을 것이다. '게임이 재미나 의미가 있으면 하고, 재미나 의미가 없으면 안 한다.' 이런 식으로. 하지만 여기까지 게임 소개를 읽었다면, 이 게임을 얼마나 지속할지는 여러분의 마음 가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킬링타임 목적으로 시작한다면 1시간 해보고 '반복 짜증 나네'하고 지워버릴 수도 있고, 새로운 경험으로 시작한다면 그래도 엔딩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게 얘기했는데, 그냥 끝까지 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