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 오브 엑자일
○ 문제의식
‘꼭 필요한데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청소년들이 고백하는 ‘꼭 필요한데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통계를 내지는 못했지만, 수백 명의 청소년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대답은 ‘끈기’다. 무엇이든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하루 체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1년 동안 꾸준히 해야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 반에는 전문 보디빌더를 지망하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몸짱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몸이 되려면 얼마나 운동을 해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수치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윗몸일으키기 100회, 팔 굽혀 펴기 50회를 6개월 동안 꾸준히 하라고 했다. 17살의 나에게 6개월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힘든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며칠 또는 1주일 정도는 조금만 마음을 내면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달 이상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무언가를 얼마나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일까?’ (무엇이냐가 중요할 텐데, 여기서는 나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가정하자)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개 말이 아니라 경험이다. 기약할 수 없는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 ~일을 n 년 동안 꾸준히 해봤어.’라고 해야 그 사람의 끈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00 해서 안 하는 거다’의 폐해
교육일을 하면서 “사람이 어떨 때 배우고 성장하는지?” 그리고 “어떨 때는 배우지 못하는지?”에 관찰하고 연구해 왔다. 두 질문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하나의 조건은 ‘시간’이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면 배울 수 있고,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시간을 쓰지 않으면 배우기 어렵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누구나 꾸준히 하리라는 각오를 다진다. 그러나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치고 지속하는 게 힘든 상황이 되면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시간을 쓰지 않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끈기를 기르는 일은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더 지속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설사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지속한 만큼 자신의 끈기는 발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게 문제이다. 신기한 합리화를 시작한다. '할 수 있는데 00 해서 안 하는 거다'이다. 00에는 여러 이유가 들어간다. 귀찮아서, 바빠서, 할 필요를 못 느껴서, 시간 낭비여서 등등. 무언가를 지속하지 않을 때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핑계다.
뭐 살다 보면 하기 싫은 건 핑계 대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태도 또는 습관으로 굳어질 때다. 머리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해보지 않은 일이 쌓이다 보면, 중요한 상황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을 벌였는데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한두 번은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한계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당신의 대처는?
특히 이런 태도가 가장 좋지 않은 방향으로 드러나는 상황은 한계와 마주했을 때다.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넘을 수 있는 일이면 한계라고 할 수도 없다. 최선을 다해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때, 안될 가능성이 높아 보일 때가 한계 상황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한계’ 정도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저마다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
결과적으로 고군분투 끝에 한계를 뛰어넘었던 때도 있고, 애썼지만 실패했을 때도 있다. 그리고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경우도 있다. 이 세 상황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최근 폐막한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29년 만에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을 따내 큰 이슈가 됐다. 모든 메달이 값지지만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결승전에서 안세영 선수가 보여줬던 모습 때문일 것이다. 1세트 도중 넘어지면서 무릎 부상을 입어 위기 상황이었다. 점프를 뛰기 힘들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술적으로 앞서는 모습으로 우승을 따냈다. 이후 결승전 상대인 천위페이에게 7전 8기 만에 승리했다는 스토리가 알려지게 되면서 커뮤니티에서 아시안 게임 전인 3월에 '유퀴즈온더블럭'에 나와서 했던 인터뷰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tvN 유퀴즈온더블럭 184회 <괜찮아유>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 (영상 일부 발췌) 2023. 3. 8.
배드민턴 안세영 "하면 된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2018) 1회전에서 천위페이 선수에게 져 탈락한 후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 하지만 올림픽 8강에서 다시 천위페이 선수에게 패배. 다시 1년을 준비. 2022 세계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에서 천위페이 선수에게 7패 후 8번째 도전만에 결국 승리했다. 그리고 2023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두 번 연속 승리.
"천위페이 선수한테 제가 7패까지 해봤어요. 한 번도 못 이길 선수라고 생각했죠."
"오늘은 되겠다. 여유가 있었어요. 그만큼 연습했고, 분석했고, 자신도 있었고"
"안될 것 같지만 계속하면 돼요."
○ 해석
"안될 것 같지만 계속하면 돼요"
안세영 선수 인터뷰에서 주목하고 싶은 얘기는 '계속하면'이다.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냐는 것도 중요한 실력이다. 안세영 선수는 천위페이 선수를 넘어서기 위해 무려 4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안세영 선수의 말을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뭐든 도전하면 다 이룰 수 있어’는 아닐 것이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전제하자. 계속하면 안 될 일이 없지만 문제는 심리적인 한계 상황이 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한계 시점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끈기만큼이라고 생각한다.
한계를 뛰어넘었던 때, 애썼지만 실패했을 때, 그리고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때.
내가 얼마나 '계속할 수 있었는지', 내 끈기가 성패를 좌우지하는데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름 : 패스 오브 엑자일 (Path of Exile) / 청소년 이용불가
제작사 : Grinding Gear Games
장르 : 온라인 ARPG (핵 앤 슬래시)
출시일 : 2019년 5월 30일 (한국 최초 출시일)
*게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른 사이트를 참조하세요
# 1. POE 대체 무슨 게임이죠?
POE는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뉴질랜드의 인디 게임 개발사)가 개발한 ARPG 장르의 게임이에요. 키보드로 스킬 쓰고 마우스로 이동을 조작하죠. 직접적으로 비교하면 디아블로 2의 확장판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실제 개발자들 역시 디아블로 2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개발했다고 수차례 언급했었거든요. 그들은 지금도 디아블로 2의 팬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2013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고 꾸준히 업데이트한 덕에 기본 스토리는 액트 10까지 꽤 긴 편입니다. PC뿐만 아니라 X-BOX에서도 즐길 수 있어요. 최고 레벨은 100인데, 액트 10 이후 더 할 게 많아집니다. 다양한 엔드 콘텐츠를 통해 장비를 파밍하고 더 강해지고, 또 다른 스타일의 보조 캐릭터를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처음이라고요? 입문자를 위한 '패스 오브 엑자일' 기본 정보 20가지, 장요한, 인벤)
핵 앤 슬래시 파밍게임의 팬으로서 디아블로 2의 정신적 계승작이라고 불리는 Path of Exile(이하 POE)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정식 출시 이후 옛날 향수를 추억하며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됐었다. 그러다가 2022년 여름 새 시즌 시작에 맞춰 플레티넘 트로피를 목표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다시 시작했다. 8월부터 12월까지 두 시즌 동안 300시간 정도를 열심히 달렸다.
패스 오브 엑자일은 내가 아는 게임 중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이다. 내 취향이 아니어서 중간에 그만둔 게임을 제외하고, 좋아서 열심히 했는데도 다 깨지 못한 최초의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엔드 콘텐츠로 등장하는 보스들이 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어렵다. 소울류 게임은 아무리 어려워도 계속 도전할 수 있기에 조금씩이라도 패턴을 익히고 실력을 키워 결국에는 이길 수 있다. 그러나 POE는 보스를 불러내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0.1% 초고수들이 보기에는 '네가 못 하는 거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상위 1% 이상에는 포함될 정도로 했었다. 지금까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POE를 했던 게임 유저의 0.2~0.3%밖에 달성하지 못한 트로피까지는 해냈었다. 그러나 결국 클리어를 코앞에 두고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한계를 느껴 포기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엄밀히 얘기하면 이건 못하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결국 해낼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건 안 하는 것이다. 근데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언젠가는 가능하다는 확률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전의를 상실한 상황에서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되어버렸다.
○ 결론
다시 얘기하지만, 이 게임은 클리어하기 매우 어렵다. 게임 센스와 조작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백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도 깰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 없다.
게임에서 이렇게 한계를 느껴본 게 처음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을 살면서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한계를 마주한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봤다. 그리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떠올려봤다.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에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완전히는 아니어도 성취가 있었다.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을 포함해 간절함이 그 정도는 아닌 일은 포기했다.
안될 것 같지만 계속하면 돼요. 인디언의 기우제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될 때까지 하는 게 비결이라면, 해내고 말고는 그것의 난이도에 달린 게 아니다. 나의 간절함과 의지에 달린 것이다. 위인전에 등장할만한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로 할 수 있는 도전 기회는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게임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스스로 좀 정리가 된다. 인생을 결정짓는 문제가 아니라 게임이니깐 포기한 거다.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반대로 내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생에서 3번만 간절함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나에게 남은 횟수는 언제 사용해야 할까?
- 패스 오브 엑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