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라리 Oct 09. 2023

삶의 방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스 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

인생질문 : 삶의 방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문제의식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공급 과잉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소비가 있어야만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있고, 계속된 소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유행이 생겨난다. 사물, 취미, 사상이나 학문 등의 유행은 상당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장은 기술 등 다른 사회 요인과 합쳐져 뜨는 분야와 지는 분야로 나뉜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뜨는 분야에 탑승한 사람은 앞서 가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뒤처지게 된다.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뜨는 분야가 무엇인지 그리고 거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뭘 준비해야 하는지 찾는다. 과거에도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나도 열심히 찾다가 문득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 앞서 간다는 게 뭘까?

- 모두가 유행에 따를 수 없는 것 아닌가?

- 청소년들의 70~80%가 이과로 진학하는 게 적성을 살리는 일인가? 

- 청년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코딩, AI 공부하는 상황이 바람직한가?

- 오히려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게 다 돈 때문이다. 돈이 중요한 건 알지만 유행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라면, 혹은 따라가기 싫은 사람은 어떡해야 할까. 삶의 방향성이 이렇게 결정되는 게 맞나?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



○ 작가의 대답

[교육 풍향계] '위하여'와 '의하여', 작가 현병호 (글 일부 발췌)

물질세계에서 동식물이든 물질이든 모든 존재는 에너지의 효율이 가장 높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자연계에서 에너지는 '의하여'움직이지 결코 '위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의하여'는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지만, '위하여'는 관념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결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관념에 기초한 삶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의지나 동기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의 문제다. 차렷 자세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랑 없이 관념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관념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 변절의 길을 걷게 된다.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관념이 아닌 다른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의하여 산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삶은 아니다. 욕망의 에너지로 사는 사람도 있고 사랑의 에너지로 사는 사람도 있다. 다만 그들의 공통점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하여 사는 사람은 위하여 사는 사람이 갖지 못한 내부 발전소를 갖고 있는 셈이다. 흔히 '작심삼일'이 되는 까닭은 목적을 '위한' 행동에는 에너지가 자체 조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설령 동기부여가 되었다 해도 그것이 변화를 낳기는 어렵다. 동기부여가 목적의식을 갖게 하는 거라면 그것은 '위하여'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다. 변하는 '의하여' 일어나지 '위하여' 일어나지 않는다.


○ 해석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인해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생긴다.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지?'를 생각한다. 과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시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내가 선택한 것도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현병호 작가님 덕분에 삶을 돌아보는 좋은 도구를 얻었다. '위하여' 사는지, '의하여'사는지를 점검해 보는 방법이다. 신기하게도 삶의 방향 또는 길을 잃었다는 자각을 할 때를 보면, ~을 위하여 살다가 에너지가 고갈됐을 때다. 


문제의 원인은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을 위하여 달리다가 에너지가 떨어져 현타가 온 상황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에 의해 사는지,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은 무엇인지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답답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어서 힘을 내서 살아가야 하는 시점인데 내가 왜 이럴까? 


자책하던 중, 최근 일본 게임 제작사 Falcom의 유명 RPG 시리즈의 최신작 <이스 10>이 나왔다. 아무리 마음이 복잡해도 관심 있는 신작 게임의 출시에는 눈길이 간다. 갑자기 몇 년 전 아주 감명 깊게 플레이했던 이스 8편의 기억이 소환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가 펼쳐진다.





게임이 답하다


이름 : 이스 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 (Ys Ⅷ: Lacrimosa of DANA) / 12세 이용가
제작사 : Falcom
장르 : ARPG (액션 롤플레잉)
출시일 : 2016년 10월 27일 (한국 최초 출시일)
  *게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른 사이트를 참조하세요


이스 시리즈는 1987년부터 시작한 Falcom의 대표 IP다. 시리즈는 항상 평타 이상의 준수한 게임을 만들어 왔다. '선형적인 전개의 JRPG는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사람만 아니라면 유쾌한 BGM과 타격감 좋은 액션으로 누구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여객선에서 일하던 아돌(주인공)은 갑자기 들이닥친 수수께끼의 거대 해양 생물로 인해 배가 침몰하면서 배의 승객들과 함께 섬에 표류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이 바로 "영원히 저주받은 섬" 세이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프롤로그 내용 요약

프롤로그를 보고 모험가 아돌 크리스틴(주인공)이 이번 8편에서는 저주받은 섬에서 탈출하는 스토리겠거니 생각했다. 섬을 탈출하기 위해 섬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이 섬에 있었던 고대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스토리가 엄청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전체 6부의 스토리 구성 중 3부가 돼야 이스 8편의 또 다른 주인공인 '다나'가 등장한다. 10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기승전결 중 이제 '기'를 넘어 '승'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3장에 도달하기 전에 이 게임을 그만뒀다면... 적어도 이 게임의 스토리를 체험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아돌보다 더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다나'기 때문이다.


1~2부에서 인물, 사건, 배경의 중심이 아돌이었다면 3부부터 끝까지는 다나가 중심이 된다. 이스 본편 10개 시리즈를 통틀어 아돌과 다른 캐릭터가 더블 주인공으로 나온 것은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이스는 아돌의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른 캐릭터를 주연급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뭘까. 익숙함을 깨는 설정이라면 게이머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Falcom의 설득은 성공했다. 이스 8편은 이스 시리즈 중에서도 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다나는 Falcom 창사 40주년 기념 여성 캐릭터 인기투표에서 공동 1위를 했다. 


다나가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우면서 유니크한 캐릭터 디자인은 기본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책임감 있고 인정이 많으면서도 강인하다. 남들에게는 없는 예지력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성이 훌륭하다. 어쩜 저렇게 이타적으로 살 수 있는지 놀랍다. 정리하면 입체적, 능동적인 성격에 특별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영웅 서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치고 이 정도 아닌 인물이 있을까? 충분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특별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나를 특별한 캐릭터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짧지만 강렬한 배경서사가 다나를 개연성 있는, 공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다나는 고대 왕국 에타니아 시대의 인물로 세이렌 섬은 문명 수도인 아이기아스가 있던 지역이다. 어렸을 적부터 예지능력이 능해서 여러 미래를 보았지만, 원하지 않은 미래마저 보여서 현재와는 달리 우울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 다나의 어머니가 이력을 억제하는 반지를 줘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어느 날, 다나와 그녀의 아버지가 잠깐 나갔던 사이, 집이 불타서 어머니가 죽고 만다. 다나는 자신이 미래를 보지 않으려 했던 탓이라며 자책하고 남을 구하기 위해 힘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 사건은 다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강박증 수준으로 남을 구하려고 한다.

선형적인 스토리 전개임에도, 다나가 어떤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게이머가 충분히 공감을 하게 되면서 유니크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 결론


삶의 방향은 어떻게 결정될까. 이스 8의 다나를 참고하면 인생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으로 큰 사건이 삶의 지향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나한테는 그런 사건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 봤다. 다나가 겪은 일 정도로 큰 사건은 없었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찾았다.


"사랑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

(『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천성호 작가 인터뷰,  예스 인터뷰 > 7문 7답 일부 발췌)

Q. ‘사랑’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목표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게 단기적인 목표이든 장기적인 목표이든 간에, 사랑을 함으로써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와 갈증이 생겨나는 거죠. 부모가 된 분들은 가족을 위한 목표를, 연인이 된 분들은 두 사람을 위한 목표를, 또 사랑을 얻거나 잃어버린 분들은 그에 따른 새로운 방향이 결정되죠. 삶을 살다보니 사랑도 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사랑을 하다 보니 삶도 살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 중요한 것은 큰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다나에게 어머니를 잃은 사건은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이다. 끝없는 자책에 빠져 우울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고, 세상을 혐오하는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속세에 미련을 거둔 해탈한 종교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다나가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삶의 방향은 결정되는 지점도 있지만 결국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Q. "삶의 방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A.

"너를 살게 하는, 네가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

- 이스 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


 * 참고자료

현병호.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민들레>. 2020.06.15

윤태영, "1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없애는 자본주의의 마술 - '유행'", <NAVER 포스트>, 2020. 06. 19

이전 09화 나만 크게 느끼는 문제 상황, 어떻게 해야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