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라리 Oct 01. 2023

나만 크게 느끼는 문제 상황, 어떻게 해야 할까?

포가튼 시티

인생질문 : 집단 구성원 중 나만 변화를 추구하는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 문제의식

'내가 00을(를) 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00에는 진로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들어갈 수 있다. 미술, 음악, 편입, 석사, 의사, 판사, 유학 등등. 주로 아쉬움과 후회가 주된 감정이다.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평가를 할 수도 있고, 과거의 일을 그저 추억할 때도 있다. 개인적인 일은 개인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 지난 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더 나은 선택을 다짐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 밀접하게 상호작용 하는 상황에서 완전히 개인적인 일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개인적인 일'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일' 정도로 생각하자)


이렇게 개인적인 선택도 쉽지 않지만, 다른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라면 더 어렵다. 나만 잘 선택해서는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 제기라면, 최고 난도다. 선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서 받게 될 스트레스와 문제를 제기했을 때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비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명확하게 답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고민하다가 우선 주변에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부터 찾아본다.


주변에 나와 비슷한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다. 같이 의논해서 해결 방법을 찾아 나가면 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없을 때다. 내 문제의식에 공감해 줄 수는 있으나 변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감각이 다를 수 있다. 여기서부터 내가 예민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둔감한 건지 헷갈리게 된다. 내 판단 대로 변화를 밀어붙여야 할지, 다른 사람들의 감각에 내가 맞춰야 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차피 인생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뭔가 힌트를 얻고 싶다. 우선 내 탓과 남의 탓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찾아봤다.


○ 학자의 대답

"남 탓과 자기 탓, 무엇이 건강한 걸까?"

(일부 발췌, 전체 내용은 글 하단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우리는 불안이나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분노를 다스리며 살아갑니다. 타인과 갈등이 생기면 타협을 시도하고 문제를 풀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지요.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자아의 기능을 방어 기전이라고 합니다. 방어기전이란 자아(ego), 본능(id), 초자아(super-ego) 사이에서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간의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스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흔하게 쓰는 방어기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투사(projection)
2. 억압(repression)
3. 합리화(rationalization)
4. 퇴행(regression)과 신체화(somatization)

이상의 방어기제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흔히, 어쩌면 매일 사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성숙하고, 건강치 못한 삶의 태도를 모두가 조금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건강하고 성숙한 방어기제(유머나 승화, 이타주의)만 갖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인군자나 봉사, 박애주의자들이라고 해도 항상 내면에 불안과 양가감정, 해결하지 못한 분노 등을 다스리면서 지내는 것이지요.

지나친 억압과 억제도,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도 역시 건강하지 못합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방어기제에 대한 너그러움과 솔직함, 그리고 균형입니다. 대인관계와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감정을 참아야 할 때와 표현해야 할 때를 깨닫고 알아가는 것. 그것이 조금 더 건강한 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해석


'남 탓과 자기 탓, 무엇이 건강한 걸까?'라는 글 제목을 봤을 때, 내심 둘 중 하나의 답변이 나오길 기대했다. 결론은 균형이다. 성인군자나 박애주의자들도 항상 감정을 다스리면서 사니, 보통 사람인 우리들은 남 탓과 자기 탓을 균형 있게만 해도 건강한 편이라고 얘기한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 내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내 탓이 더 큰지 남의 탓이 더 큰지 판단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글에서 지나가듯이 언급한 한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건강하고 성숙한 방어기제(유머나 승화, 이타주의)만 갖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분명히 있었다. 단순히 남 탓을 하거나 자기 탓을 하는 게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대응이 있었다. 유머, 승화, 이타주의. 대충 무슨 느낌인지는 알 것 같은데, 설명 없이 갖기 어렵다는 얘기만 하니 더 궁금해진다. 불가능한 일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게임이다. 거기서 힌트를 찾아본다.





게임이 답하다


이름 : 포가튼 시티 (The Forgotten City) / 청소년 이용불가
제작사 : Modern Storyteller (호주)
장르 : 어드벤처
출시일 : 2021년 7월 28일
  *게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른 사이트를 참조하세요


하나의 죄로 인해 여럿이 고통받으리라.
The many shall suffer for the sins of the one.
Pro peccata unius multis dolebunt.

2,0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한 사람이라도 죄를 저지르면 모두가 죽는 저주에 걸린 고대 로마 도시의 마지막 날을 경험해보세요. 타임 루프 활용, 현지인 심문, 탐험, 퍼즐 풀이로 도시의 심장부에서 놓인 미스터리를 해결해보세요. 도시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공식 게임 설명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게이머가 '주인공 = 나'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대 시대에 살고 있던 주인공이 차원문에 빠져 고대 로마의 한 도시로 가게 된다.'는 설정만 받아들인다면 게임에 몰입하긴 어렵지 않다. 게임 속 주인공도 처음 보는 곳에 갑자기 뚝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새로운 게임을 처음 시작한 게이머의 어색함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고대 로마의 도시에서 헤쳐나가 하는 일에는 주인공의 과거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고대 유적을 조사하던 중, 시간 왜곡이 생겨 1세기 로마의 어느 도시에 뚝 떨어지게 된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모든 사람이 죽게 되는 '황금률'이라는 법이 작동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상하게 여기는 상황이지만,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주인공(나)이다. 다른 사람들은 운명으로 여기고 거기서 살아가지만 주인공(나)은 그럴 수 없다. 상황을 인지하고 나서는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다시 말해,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집단 구성원 중 나만 변화를 추구하는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게임의 상황은 처음에 제기한 문제의식과 연결이 된다.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해관계나 인간관계 등 많은 것들이 얽혀 있어 복잡하지만 게임에서는 문제 상황이 단순하다 보니 해결 방법이 명확해진다. (전제 : 주인공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① 상황 파악 : 이런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는다.

② 문제 해결 계획 세우기 : 파악한 상황을 풀어 나가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한다.

③ 문제 해결 시도하기 : 계획을 실행한다. ①~③을 반복한다.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등등. 게임이라서 해서 사람들과 관계 맺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결코 쉽지는 않다.


상황을 파악하는 단계부터 다른 사람하고의 관계가 요구된다. 당연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정보를 다 내어주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면서 관계를 만들어 간다. 관계가 형성될수록 점점 문제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의 문제해결 과정에서 남 탓과 자기 탓을 넘어서는 성숙한 방어기제(유머나 승화, 이타주의)를 체험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의 상황에서는 유머, 승화,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단순하고 안전한(게임의 실패가 나의 실패가 아니다) 게임 속 세상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


'인생은 답이 없지만 게임은 결국 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소설, 영화를 보고 삶의 교훈이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남의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러하니 실제로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게임에서는 더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현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경험)을 느낄 수 있다면 괜찮은 콘텐츠 아닐까? 바로 이 게임이 그렇다.




Q. "집단 구성원 중 나만 변화를 추구하는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A.

"변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네가 그런 사람인지 한 번 생각해 봐."

- 포가튼 시티


 * 참고자료

박종석. "남 탓과 자기 탓, 무엇이 건강한 걸까". <정신의학신문>. 2019.07.08

이전 08화 세상이 나의 진가를 몰라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