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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학관 Dec 21. 2019

온라인 게임 속 세상의 종말

내가 살고 있던 세계가 죽는다면 어떨까?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금 당장 멸망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데, 주위의 건물이 무너지고, 숲이 타오르고, 내 앞에서 방금 전까지 깔깔대며 웃던 친구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까맣게 색이 바랜 하늘에 큰 조형물 같은 에러 메시지가 뜬다. Game Over.


내가 살고 있던 온라인 세계가 죽었다


이때 무엇이 가장 그리울까? 그동안 쌓아왔던 나의 재산과 명성? 자연 풍경이나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장소들? 아마 가장 값진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눈 추억이 아닐까. 삶 속의 행복한 순간들을 공유한 나의 가족과 친구들. 그들이 가장 그리울 것이다.


미국의 게임회사 EA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즈 (Sims)>를 온라인화하여 2002년에 공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렇게 <심즈>는 <심즈 온라인 (Sims Online)>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플레이어들은 이 온라인 세계에 자신의 분신을 만들고 제2의 디지털 인생을 즐길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성공적인 서비스였다고 말하기엔 문제점이 너무나 많았고, 결과는 참담했다. EA에서도 적자를 계속 내는 <심즈 온라인>이 눈엣가시였고, 반면 큰 성공을 거둔 또 다른 온라인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인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에 비해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져서 결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경쟁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갔다. 하지만 미운 오리였던 <심즈 온라인>에도 충성스러운 플레이어들이 있었고, 그들이 함께 일군 돈독한 커뮤니티가 있었다.


<심즈 온라인 (Sims Online)>, 2002


결국 6년의 서비스를 끝으로, EA는 도저히 수익을 내지 못하는 <심즈 온라인>의 서비스를 과감히 종료하기로 결심하고, 유저들에게 공지를 한다. 6년 동안 애를 먹이던 게임의 플러그를 뽑는 것은 아무래도 EA 에겐 현명한 선택이었겠지만, <심즈 온라인>에서 터전을 잡고 공동체를 이룬 많은 플레이어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내가 살던 세계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소식이었다. 우리가 흔히 듣던 세계 종말론이 <심즈 온라인> 플레이어들에게는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예언도 아니고, 막연한 두려움도 아닌,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질 말 그대로의 세계 멸망이었다.


돈도 못 벌고 인기도 없는 게임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 속의 가상 세계는 이미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여기엔 작지만 그 어느 온라인 게임보다도 특별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작고 사소한 곳에서 <심즈 온라인> 플레이어들은 특별한 공동체를 일궜다


실제 <심즈 온라인> 유저였던 폴 모나코(Paul Monaco)는 그 당시의 커뮤니티를 이렇게 회상한다(07:10부터).


아내가 많이 아팠었습니다.

암 투병 중이었는데 너무 힘들었죠. 치료 과정도 고단했고, 옆에서 간병하는 저조차도 힘에 부쳤습니다. 그렇게 길고 힘든 투쟁 끝에 아내를 잃고 나서 망연자실했습니다. 도저히 일상생활을 계속할 용기도, 의욕도 없었어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심즈 온라인에 접속을 하게 됐습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 모든 것을 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뜻밖에도, 심즈 온라인의 세계는 제게 너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모두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접속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접속하면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음이 저를 반겼고, 이 작은 제스처가 저에겐 희망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저는 일상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사회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거죠.


<심즈 온라인>은 인기 있는 게임이 아니었지만,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이곳에는 누구든지 와서 서로와 허물없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폴 모나코처럼 이 곳에 정착을 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가상의 세계라 할지어도 그 어떤 곳보다도 따뜻한 곳이었다.


그곳은 자유로웠어요. 어떠한 차별, 편견도 받지 않죠. 나 자신 그대로를 받아주는 곳이었어요. 서로가 모두 친구였고, 동료이자 조언자였죠. 그 세상은 가상이었지만, 친구들은 가상이 아닌 실제 사람들이었어요. 실제 우정이었죠.



그랬던 나의 정든 세계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멸망록(滅亡錄)


스탠퍼드 대학의 디지털 매체 역사학과 교수 헨리 로우드 박사는 미래의 세대에게 게임의 역사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로우드 박사가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은 바로 온라인 게임의 역사 보존이었다. 서비스가 끝나면 그와 함께 모든 경험, 기록, 역사, 그리고 심리적, 감정적, 사회적 현상이 사라지는 온라인 게임을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조만간 서비스가 종료가 예정된 <심즈 온라인>의 최후를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서비스가 중지되기 몇 시간 전, 말 그대로 '최후의 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A를 욕하며 온라인상에서 시위를 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을까? 아니면, <심즈 온라인> 따위는 어차피 게임이니까, 이왕 사라지게 될 거 애초에 정을 떼놓기 위해 아무도 접속을 하지 않았을까? 그때 '최후'를 기록하던 로우드 박사는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의 끝을 같이 기다렸고, 그동안 쌓은 추억을 되새기는 고별의 의식이 서버 전역에 진행되고 있었다. 게임 속에 있는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DJ로 활동하던 플레이어 스파이크(Spike)는 모두를 위해 최후의 방송을 틀어주었다. 눈물을 머금고, 한마디 한마디 겨우 이어가며 스파이크는 최후의 코멘트를 방송했다(11:20부터).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네요.

저는 원래 쉽게 정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친구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그리고 헤어진다는 것이.. 정말 어렵네요. 떠난다는 것이 너무 어렵네요.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틀어 드릴게요.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먼의 'Time to Say Goodbye'입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세요. 꼭 연락하시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이만 안녕.


Time to Say Goodbye가 서버 전역에 울려 퍼지며 종말이 시작되었다. <심즈 온라인>의 세계는 갑작스러운 정적보다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환경 그래픽이 깨지기 시작하고, 캐릭터들은 하나둘씩 제자리에 멈춰 서서 연결이 끊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것이 까맣게 변하고, 최후의 에러 메시지가 떴다. 그것이 그 세계의 종말이었다.


When they pulled the plug on the server, bits and pieces of the world started disappearing. The environment began to disintegrate, the texture on the trees flickered. Then all the people froze... and blinked out of existence. And then, the world ended.
- Robert Ashley


사람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생존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의지한다. 애초에 인간의 신생아가 혼자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방비한 존재인 것처럼, 우리는 처음부터 사랑하는 이의 도움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단순히 육체적인 생존뿐만이 아니다. 정신적 생존을 위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독방 감금이 괜히 엄중한 벌이 된 것이 아니다.


폴 모나코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심즈 온라인>에서 친구를 만났고, 그 세계에서 사랑을 받게 되었다.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소속감을 느끼려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가치를 그들은 게임에서 찾은 것이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게임 속 세상에서 살림을 차리는 것은 분명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받고 있고, 실제로도 정신건강에 해로운 형태가 많이 있다. 하지만 폴 모나코처럼 온라인 세계에서 실제 우정과 따뜻함을 느끼는 것도 분명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현실로의 발돋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용도이다. 나는 게임이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가가기 쉽고 이해하기 쉬우며 작동하기 쉬운 매체로 인해 감동을 받고, 치유를 받고, 영감을 얻어 현실로 도약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나는 게임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문학가 C. S. 루이스가 말한 문학의 힘이 게임에도 존재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매체가 그 힘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문학은 단순히 현실 세계를 표현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채워 줍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며, 그로 인해 간혹 사막처럼 변해버린 삶을 촉촉하게 적셔주기도 하죠.
- C. S. Lewis


게임을 떠나보낼 때


몇 년 전, 또 하나의 온라인 시뮬레이션 게임인 <시티 오브 히어로즈(City of Heroes)>가 막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시티 오브 히어로즈의 중심지인 파라곤 시티에 모여 횃불을 치켜들고 세계의 끝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All beautiful things must come to an end (모든 아름다움도 다 끝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 <놀라운 진실 (The Awful Truth)> 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이다. 모든 아름다움에 끝이 있다지만,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막이 내리고 나면 그동안 무엇이 정말 소중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중요했는지 깨닫게 된다. 게임도 그렇다. 끝이 있기에 그동안 정말 즐거웠다고, 정말 잘 놀았다고,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게임으로 인해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며 떠나는 <심즈 온라인>의 플레이어들처럼 말이다.


게임이 끝나는 순간, Game Over의 아름다움을 더욱 많이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심즈 온라인>의 회고록은 로만 마스(Roman Mars)의 인터넷 라디오 쇼 스냅 저지먼트(Snap Judgement)를 인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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