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무심히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아침마다 빼먹을까 내 약을 챙기는 남편의 손길, 지친 엄마를 보는 큰아이의 챙김. 작은 유머에도 크게 웃어주는 이들의 눈빛과 응원.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쳐주는 후배들의 배려 가득한 모습 등. 행복의 크기에 비하면 참 소소하다.
일상이 만드는 따뜻함은 당연하고 새삼스럽다. 오히려 거창하지 않아서 좋다.
'소통과 정성'
점심 식사 후 가지는 수다와 차 한 잔. 배달 음료에 따라온 따뜻하고 정성 가득한 포스트잇 메모와 세 송이의 장미 꽃다발. 거기에 덧붙여진 서너 개의 과자.
'아이가 건네는 손 편지'
편지를 쓰면서 누가 내용을 볼까 봐 손으로 가리고 적은 듯한 구겨진 편지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들의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건 손글씨에서만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어린 시절을 잠시 회상했다.
'내성적인 어린 윰'
어릴 적 말이 적은 아이였다. 현재의 나를 아는 이들이 '전 어릴 적에는 말이 없었다.'라고 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믿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거짓말'이라고 내게 대꾸하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그런 내 모습을 귀엽게 보셨는지, 담임선생님께서 괜히 나에게 장난과 말을 걸어주셨다.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오히려 더 부끄러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수줍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보니, 그 선생님의 모습에 공감되고 감사하다.
5학년 선생님께 '강아지'를 분양해 드렸다. 우리 집 진돗개가 새끼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를 안고서 그 선생님의 댁까지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입양 후 몇 달이 지났을 적에 선생님댁에 도둑이 들었는데, 입양된 그 강아지가 새벽에 크게 짖는 바람에 들어왔던 도둑을 쫓아냈다고 한다. 그런 일을 내게 전해주시면서 칭찬을 하셨다. 그 말씀에도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내성적인 아이가 선생님을 잘 따르는 것,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선생님댁을 찾아갔을 때,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내가 제자에게 손 편지를 받은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을까. 내가 교사가 되어보니 그 선생님의 마음이 눈에 더 선하고, 짓궂은 궁금증이 생긴다.
사람의 감정이란 게 비슷하다는 것이 어쩔 때는 위안이 된다. 그렇기에 나의 솔직한 마음으로 뭐든 비춰보면, 타인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다.
소소한 행복이 피는 곳을 알고, 그대로 그냥 걸어가 보자. 가능하면 머리를 복잡하게 쓰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