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에너지를 쓰는 방식이다.

사랑

by 감격

나는 사랑에 성공한 적이 없다.

여기서 성공이란,

뜨거운 감정이 식지 않고 영원히 평온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늘 사랑을 갈구했지만,

동시에 사랑 안에 있으면 내가 안전하게 지켜질 거라 믿었다.

그 달콤한 오해 때문에 내 삶의 수많은 선택을

'사랑'이라는 이름 뒤로 숨기곤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랑을 늘 '감정'으로 판단해 왔다.

마음이 뜨겁게 차오르면 사랑이 있는 것이고,

차갑게 식으면 끝난 것이라 여겼다.

붙잡고 싶을 만큼 뜨거울 때는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농도가 흐려지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때의 내 사랑은 늘 바빴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밀어내거나.

관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애쓰는 동안,

정작 내가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는 살피지 못했다.

사랑은 관계를 빠르게 묶어주었지만, 정작 그 안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소멸해 갔다.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드러났다.

'사랑한다'는 말은 입가에 남아 있는데

정작 나의 행동이 마음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말만 앞세운 사랑에서는 공허했고,

무조건 버티기만 하는 사랑은 나를 갉아먹었다.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나는 '버티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혹은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나를 죽여가는 과정.

그것은 헌신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학대였다.

그렇게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니 사랑을 할수록 나는 초라해져 갔다.


이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다.

육아는 말만으로도, 혹은 나를 잃어가는 인내만으로도 결코 해낼 수 없는 말이었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감정에 취해 있다가도,

고갈된 에너지 앞에 괴물이 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처참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내 사랑의 방식을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내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자라게' 하고 있었다.


사랑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할지 결정하는 에너지의 쓰임에 가깝다는 사실을 배웠다.

관계를 붙잡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는 불안이 되고,

나를 증명하게 위해 쓰이는 에너지는 이 된다.

그러나 서로의 곁을 묵묵히 걷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는 비로소 동행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이 힘을 가질 때는 말과 행동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뿐이다.

말은 길이 되고, 행동은 그 길을 비추는 눈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아무렇게나 내뱉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양 밀어내지도, 소리 없이 버티지도 않는다.

대신 표현하고 보여주고, 그 둘 사이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는 쪽을 선택한다.


더 이상 나를 죽여가며 버티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사랑이란 내가 어떤 삶을 책임지겠다고 선택했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사랑을 잘하기 위한 지침서가 아니다.

다만 내가 사랑이라는 말에 잘못된 에너지를 쓰며 스스로를 잃어왔는지에 대한

뒤늦은 고백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사랑이 자꾸 버겁고,

관계 앞에서 나 자신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면,

그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에너지의 물길이 오직 한 방향으로만,

혹은 막다른 길로만 흐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사랑은 느끼는 감정이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드러내는 언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은 오늘,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쓰고 있나요?


월, 수, 금 연재
이전 01화<삶을 움직여 온 말들>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