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균 Jul 01. 2018

진로 교육게임, 게이미피케이션 개발을  접은 이유

청소년 진로 교육게임, 필요하지만 너무나 어려웠던 도전

저희 랩은 다양한 교육게임, 게이미피케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제까지 돌이켜보면 그중에서 대략 3개의 프로젝트를 접었습니다.

1) 뇌물, 부당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의식개선 게임

2) 성희롱, 성폭력 예방 게임

3) 청소년 진로 교육게임     


오늘은 “3) 청소년 진로 교육게임”을 개발하다가 접은 이유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1&2번에 관한 이야기는 후일을 기약합니다.)

국내 여러 교육기업, Edtech, 교강사 분들께서 청소년 진로 교육게임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시중에 보면 다양한 보드게임, 카드형 교구, 소프트웨어가 나와 있습니다.

저희 랩에서는 작년 상반기에 개발을 시도하다가 대략 6개월 만에 접었습니다.     

초기에 저희가 분석한 국내 교구들에서 가장 많이 관찰된 기본 흐름은 대략 이랬습니다.     

“홀랜드 테스트 -> 연관된 직업 추천 -> 해당 직업을 얻기 위한 대학의 관련 학과, 전공 추천”의 흐름입니다.     

이 모델을 보고, 저희는 “과연 이 방법으로 청소년에게 진로를 교육하는 게 최선일까?”라는 질문을 오래 고민했습니다.


늘 같은 생각이지만, 교육 콘텐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만의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게임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기에 진로 교육의 본질, 철학에 관해 고민했습니다.     

저는 로보틱스(학부), 산업공학(석사), 인지과학(박사)을 공부했고, 기업 규모/국적으로 보면 스타트업(직접 창업 경험, 다른 분의 회사 운영 경험), 중견기업, 외국계 기업에서 일했으며, 업종으로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 컨설팅, 투자사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제 경험에 문헌조사를 버무려서 우리 팀에서 정립한 모델은 대략 이랬습니다.     

“살아오면서 내게 영향을 준 요소들(과거)”이 지금 “나의 꿈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현재)”을 정립하는데 관련되었으며, 현재 요소들이 “세상, 사회, 공동체에서 나의 소명(미래)”을 꿈꾸게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살아오면서 내게 영향을 준 요소들(과거)”은 정보공학(Information Engineering)적인 접근법입니다. 원래는 기업 내부 시스템을 분석하는 기준인데, 개인의 삶을 분석하는데 차용해본 것입니다.     

여담으로 위 모델에서 "가치관"에 해당하는 부분을 주제로 제가 디자인한 게임이 Mayfly(메이플라이)라는 인생체험 게임입니다. 대학에서 10년 넘게 학생 상담을 하면서, 20대 젊은이들의 가치관 자체가 매우 희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가치관이 옳다/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돌이켜보니, 저역시 살아오면서 가치관을 테마로한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었고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희 팀이 정립한 모델을 놓고 볼 때, 앞서 언급한 “홀랜드 테스트 -> 연관된 직업 추천 -> 해당 직업을 얻기 위한 대학의 관련 학과, 전공 추천”은 전체 중 일부였습니다.         

여기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 일부라도 게이미피케이션을 해야 할까?”, 아니면 “전체를 손대야 할까?”     

“그 일부라도 게이미피케이션을 해야 할까?”에 Yes를 해보니, 자칫하면 일부가 전체로 보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전체를 손대야 할까?”에 Yes를 해보니, 손댈 부분이 너무 방대했습니다. 앞서 제시한 과거, 현재, 미래 모델도 매우 비세부적이어서, 일부에 돋보기를 들이대니 더욱 큰 난관이 보였습니다.      

일예로, 단기적 직업에 돋보기를 들이대니, “그 직업을 청소년에게 어떻게 이해시킬까?”라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통계청 직업분류가 천개가 넘는데, “그중 하나의 직업을 청소년에게 온전히 이해시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교수는 ~~~한 직업이다."라는 몇 줄의 문장으로 청소년에게 교수라는 직업을 제대로 이해시킬 수 없다는 생각, 자칫 특정 직업에 관한 환상이나 오해를 심어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직업을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대략 이해하려면 무엇을 바라봐야할까?” 이 질문에 관해 우리는 Porter의 Five Force Model(경영학, 산업공학에서 산업 내 기업의 경쟁상황을 분석하는 데 많이 쓰는 모델이며, 비판에 따라 첨삭된 버젼이 몇 가지 있습니다)을 잠시 빌려봤습니다.     

Porter의 모델은 본래 직업 분석과는 무관합니다. 다만, 사회 속 개인을 하나의 기업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그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모델이 이것입니다.     

이 모델을 생각하고 나니, 더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저희 팀이 경험한 몇 개의 직업에 관해서는 이 모델을 기초로 시뮬레이션, RPG를 통해 플레이어(청소년)에게 그 직업의 특성을 체험하며 느끼도록 해줄 수 있겠으나(물론 이것도 매우 방대한 작업), “몇 개”를 넘어선 최소 수십개, 백개의 직업을 이 모델로 보여주는 건 우리가 가진 자원의 제약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현재 이 프로젝트는 중단한 상태입니다. 갑자기 얘기가 확 끝나서, 허무하시죠? 저희의 시도가 아직은 허무하게 멈춘 상태여서 그렇습니다.

청소년 진로 교육게임을 개발하는 교육기업, Edtech, 교강사분들에게 저희가 고민했던 내용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희의 실패/중단기를 공유합니다.  특히, 청소년 진로 교육게임을 개발하시는 분들께서 제게 자문을 요청하시는 경우가 몇차례 있었어서, 자랑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정리해봤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