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서클의 시각화 '오징어게임' 와 명시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의 그린스탬프
본격적인 게이미피케이션 기반 '부자되는 IP 창작워크샵'에 앞서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의 작은 역사를 살펴봅시다.
과연 언제부터 ‘게임화’가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말 ‘게임화(Gamification)’은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게임 같은~, 게임처럼 재미있는, 게임과 관련 있는~’ 등의 말들이 ‘게임화’이고 ‘게이미피케이션’이라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문자그대로 '게임처럼'재미있는 것의 대명사는 '놀이'입니다.
따라서, ‘게이미피케이션’의 뿌리는 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이(play)'의 기원과 이론은 방대합니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Homo Ludens >의 저자 후이징아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놀이와 게임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현재도 게임 및 게임화를 연구하는 학계에서 놀이와 게임을 거의 동일선상에 놓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화를 다루는 본 고에서는 '게임'과 '놀이'를 같은 맥락으로 사용하겠습니다. 게임화의 연원이 놀이에서 비롯됨을 알았으니. 이제 그 형식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원형(형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1) 신체(맨 손) 놀이
2) 선(line) 이용 놀이
3) 도구 이용 놀이
이 같은 세 가지 놀이 원형의 선조는 무엇일까요? 신체 뿐만아니라 선이나 물체를 놀이에 이용한 것은 초보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맨 손(신체) 놀이의 조상은 ‘가위바위보’ 일 것이 자명합니다. 그 외에도 술래잡기(hide and seek)나 그 응용인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등이 있습니다. 술래잡기류의 게임은 전세게 공통적인 어린이 놀이로 알려져 오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지능이 발달하기 전에는 '생존'을 위한 활동에만 급급했을 겁니다. 빙하기를 견뎌내고, 동굴 밖으로 나오면서 모여 살기 시작한 선사시대 우리 인류는 생존 외의 '여가'라는 개념에 눈을 뜨고 각종 게임들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중 첫 번째가 가위바위보 류의 맨손 놀이였고, 술래잡기 류의 신체 놀이였던 겁니다. 곧 신체만을 이용하는 것 보다 재미있는 놀이가 필요하였을 겁니다. 고대인들은 바닥에 선을 긋거나 물체를 놀이에 접목시켰을 겁니다.
'선(line)'을 이용한 놀이로는 ‘사방치기(hopscotch)’나 ‘오징어 놀이’류의 변형된 구조일 것입니다. 선을 긋는 행위는 후이징아가 주장한 매직서클(Magic Circle)**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입니다. 후이징아는 '플레이가 시작되는 순간 현실이 확연히 바뀐다'고 하였습니다. '사방치기, 오징어게임'에 그어진 선은 게임참가자들에게는 ‘목숨(Life)’ 걸고 사수해야하는 생과사의 경계입니다. 이런면에서, 선을 이용한 '오징어게임'류가 매직서클이라는 게이미피케이션 이론이 적용된 최초의 게임으로 해석할 수을 것입니다.
이러한 선을 이용한 놀이도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원형입니다. 특히,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오징어게임(Squid Game)'은 한국에서는 '오징어 찡' 또는 '오징어 놀이'라고 불리던 전통놀이입니다. 그럼에도, 영화 제목에 당당히 '게임'이라 못 박은 게임인의 한 사람으로 감독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선을 이용한 게임은 상황에 따라, 선 외에 납작한 돌(나무, 물체)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도구를 이용한 게임으로는 ‘공기’,‘자치기’, '구슬치기' 그리고 ‘새총’ 같은 도구를 이용한 놀이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이 같은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놀이 역시 세계 도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새총’은 최초의 게임화 도구로 분석이 가능합니다. ‘사냥’이라는 비게임 영역에서 고대인(player)을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게 해 주니 말입니다. '사냥'이라는 다소 무섭기도 하고 부담스러운 활동에 새총을 도입함으로써, 사냥이 즐거워졌을 테니까 말입니다. 멀리서 일격을 가할 수 있으니, 두려움도 훨씬 덜해졌을 겁니다. 사냥 외의 시간에는 분명 ‘새총’은 훌륭한 여가 도구(게임)였을 것입니다. 이 소재를 바탕으로 ‘앵그리버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죠.
고대 인류의 놀이의 세 가지 형식을 추정해 보았으니, 이제 역사적인 맥락으로 접근해보겠습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이 오래전 등장합니다. 약 3천 년 전(기원전 1159~1140)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고대 리디아 왕국이 있었는데, 극심한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을 ‘게임’으로 슬기롭게 타개했다고 나옵니다. 3000천 년 전 고대왕국의 가뭄이 한두 해가 아니라 무려 18년간이나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리디아 왕은
“하루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그다음 날은 모두가 게임을 하라"
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식량 부족을 슬기롭게 버텼다고 하는데, 일종의 ‘정치’ 영역에 ‘게임’을 적용한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주사위를 비롯한 각종 ‘게임’들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리디아 왕국은 18년의 기근을 버텼다고 합니다, 게임이 없었더라면 그 절반인 9년도 못 버텼을 겁니다.
리디아 왕국 이전의 ‘게이미피케이션’ 흔적도 많습니다. 신화나 경전(성서)은 물론 왕무덤에 까지도 등장하죠.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에는 여왕(네파르타리)이 ‘게임(서넛)’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약 550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요. 이 이집트‘게임 벽화’에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신의 비호를 받을 것이다’
라는 문구가 있어요, 당시 ‘서넛(게임)’은 최고 권력자들만의 ‘신성’을 강화시키는 게임화 도구로 추정됩니다. 아쉽게도, 민간인들 사이에 많은 ‘게임’들이 있었겠지만, 기록으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역사’는 승자(권력자)들의 기록이었기에, 전해오는 문헌이나 사료들은 ‘승자(왕, 절대자)’의 기록이 대부분인지라 '민초'들의 '게임'의 근거들은 거의 찾기 어려운 거죠.
지금부터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정의에 부합하는 역사 속 게이미피케이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즉, 우리가 인식하기 시작한 '의도적'으로 기획된 게임화를 ‘명시적 게이미피케이션’이라 칭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명시적’ 게임화의 첫 사례는 ‘S&H그린스탬프’(1896)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할인쿠폰의 원조격인 그린스탬프(S&H Green Stamps)는 무려 1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96년에 S&H사(스페리&허친슨 사, Sperry & Hutchinson Co.)에서 처음으로 대대적인 게임화 마케팅 툴로 '그린 스탬프'의 사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명시적 게이미피케이션의 시작이라기보다는 ‘게이미피케이션 전용 인터페이스 등장’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린스탬프를 시작으로 비로소 게임이 다른 영역에 처음으로 ‘명시적’이며 ‘의도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마케팅의 관점에서 접근한 게이미피케이션이지만, 현재까지는 명시적 게이미피케이션의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초의 게이미피케이션 개척자의 영광은 S&H사의 ‘토마스 스페리’에게 돌리는 것이 맞을 거 같습니다.
1980년대까지 그린 스탬프의 활용은 뜨거웠다고 합니다. 가전제품을 필두로 거의 대부분의 업종에 그린 스탬프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린 스탬프 가맹점 앞에는 버스정류장 안내판과 같은 구조물들이 즐비했습니다. 건물 옥상에 거대한 '광고판'이 설치되기도 했고, 상점의 간판 사이즈의 그린스탭프 광고가 함께 게재하는 점주들도 많았습니다.
그린 스탬프 등장 후, 수십 년간(정확히는 77년간)은 이렇다 할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한 특별한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그린 스탬프 자체는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였음에도, 다양한 분야에 게이미피케이션이 활용될 정도의 기술적 인프라는 구축이 안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향후, 보다 더 '놀이'의 형식과 역사에 대해 연구하여 글 올리겠습니다.
** 매직서클(Magic Circle)'은 '마법의 원'으로 번역되고 있으나, 본 고에서는 의미전달을 위해 '매직서클'로 그대로 명명하였습니다. 향후, 보다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 게이미피케이션의 대명사로 꼽을 수 있는 보이스카웃 운동 재단이 1908년에 설립되긴 하였습니다만 다소 제한적인 측면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