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국퀴어 May 02. 2022

자매도, 아는 언니도 아닌 연인

조재

짝꿍(이하 K)과 3년을 함께 살았다. 나이 차가 조금 나는 커플이라 함께 살며 주변의 의아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친구도 아니고, 학교 선배라기엔 학번 차이가 꽤 나는데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냐는 질문이 이어지면 K는 나를 동아리 선배 정도로 소개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동아리가 성소수자 동아리일 뿐.)


각자 부모님에게는 적절한 핑계를 댔다. 아버지와 살던 나는 서른이 되면 독립하려 했는데 혼자 집을 구하자니 돈이 부담되어 친한 동생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타지에 본가가 있는 K는 대학 때문에 지방에 온 케이스라 혼자 사는 것보다 아는 언니랑 사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냐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K의 부모님은 K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지 강원도까지 동행해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K의 부모님, K 그리고 나. 내 입장에선 다소 식은땀 나는 조합으로 함께 집을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행히 부모님(특히 어머니)은 내 인상이 좋았는지 당신 딸내미를 잘 부탁한다며 싸우지 말고 잘 살라는 덕담(?)을 하고 떠났다. 그렇게 3년을 함께 살았다.


K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며 강원도를 떠나게 됐다. K가 직장이 있는 서울에 홀로 집을 구하며 각자 독립생활이 시작됐다. 옷가지를 전달하러 새 집에 간 날, 물가에 내놓은 딸내미를 보러 온 K의 어머니와 마주쳤다. 유독 자기 딸을 잘 챙겨주는 좋은 언니인 나에게 그동안 자기 딸내미랑 사느라 힘들었겠다, 잘 챙겨줘서 고맙다 등의 이야기를 하셨다.


“근데 서울로 올 생각은 없어요? 우리 딸이랑 이 집에서 같이 살면 되잖아.”

...?...


“제가 직장이 강원도에 있어서요. 하하.”

“서울에 직장을 구하면 되잖아. 잘 생각해봐요~”


K의 어머니는 진심으로 내가 서울로 이직해 당신의 딸과 함께 살기를 바랐다. 어머니의 세상에 동성애자가 존재하지 않는 덕에 나는 좋은 동거인으로 인정받았다. 이거 참 좋아해야 하나. 어머니가 떠나고 K와 나는 더 큰 대한민국이라며 웃픈 대화를 나눴다.


강원도 집엔 나 홀로 남겨졌다.

현관문을 나서다 옆집 할머니와 마주쳤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밤새 비가 왔나보다, 날이 꽤 쌀쌀하다, 같은 친절한 이웃 토크가 이어졌다.


“참 조용하고 착해. 이뻐. 둘이 살지?”

“아뇨. 원래 둘이 살다가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요.”

“그래? 하여간 이뻐.”


할머니는 나와 함께 살던 K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여섯 세대가 한 층에 사는 복도식 아파트에 바로 옆집인 이 할머니와 유독 자주 마주쳤고, 그때마다 ‘자매야?’ 같은 말로 이웃 토크가 이어졌다. 나와 K는 누가 보아도 백이면 백, 자매라고 생각할 수 없도록 정말 다르게 생겼지만, 자매냐고 묻는 해맑은 이웃에게 굳이 말을 더하지 않는다.


“네. 자매예요.”


생각보다 어른들 세상에 동성애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복잡미묘한 기분이 든다. 손가락질받지 않으니 웃어야 하나, 존재조차 부정당하니 울어야 하나.

작가의 이전글 [홍보] 조재, 정한새 팟캐스트 출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