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
커밍아웃하지 않은 술자리에서 퀴어가 화두로 던져졌을 때의 어색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물론 어색한 건 퀴어 당사자인 나뿐이다. 난 말을 보태지 않고 경청하는 입장이 된다. 대화의 흐름에 따라 앞으로의 커밍아웃 여부가 결정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대체로 ‘커밍아웃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맞이했다. 가장 최근 술자리도 그랬다. 자신의 성 지향성을 의심해보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멋진 외모의 동성을 보면 설레지 않냐는 물음엔 가만히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멋진 외모가 계기가 될수도 있겠지만) 지극히 헤테로다운 말에 연애는 당사자가 하지만 그 연애가 지속되는 데에는 관계의 확장이 중요하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다. ‘그 멋진 동성과 연애를 시작한다면, 당신은 연인을 주변에 소개할 수 있나요?’ 그를 애정 하므로 진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누군가에게 연인을 소개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꽤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연애하는 내내 나의 화두는 관계의 확장이었다. 이성 커플이라면 너무도 손쉽게 이룰 수 있는 그것이, 누군가에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까. 예를 들면 친구나 가족에게 연인을 소개한다거나, 가정을 이루는 일들 말이다. 연인 외에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이 연인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는 게 쉬울 리 없다. 반대로 연인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소개해줄 수도 없다. 거기까지 가기에 너무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
① 일단 내가 먼저 커밍아웃해야 한다. 이것부터 지난한 과정이다. 그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② 성공했다면 친구와 연인에게 만남을 제안하고 동의를 구한다. (실패했다면…. 소개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안위를 걱정한다.)
③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에 낯선 타인이 귀동냥할 수 없는 장소를 물색한다. (내가 사는 곳은 한 다리 건너면 서로를 아는, 지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④ 드디어 만난다. 성공적인 만남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운이 좋았다. 커밍아웃할 수밖에 없는 자리(퀴어 동아리)에서 짝꿍을 만났으니 동아리 사람들이라는 든든한 동료들이 먼저 존재했고, 나도 짝꿍도 친한 친구들에게는 이미 커밍아웃을 한 상태라 서로를 소개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동아리 동료들과는 지속해서 독서 모임을 하며 담론을 형성했고, 친구들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짝꿍에게 잘하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어떤 날엔 나를 빼고 내 친구와 짝꿍이 만나기도 했다. 연인으로서의 짝꿍이 아닌 개별자인 짝꿍이 내 지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내 경우가 보편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운이 좋았다는 표현을 쓴다. 헤테로들도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까? 연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까? 연인을 주변에 소개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까? 그래서 많은 경우 연인 관계가 고립된다는 걸 알까?
수많은 물음표가 떠오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