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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Jun 13. 2022

커밍아웃,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조재

지난 회에 이어 대단한 연애담을 들려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라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성애 관계라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감정교류였다. 사람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가 여러 번 반복됐고, 둘만 따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술을 마시고 서로 감정을 확인했다. 하지만 상대는 헤테로(아마도 디나이얼)로 금방 씁쓸한 결말을 맞이했고 안타깝게도 난 주변에 이 이야기를 터놓을 사람이 없었다. 아마 상대도 그랬을 거다. “아니 글쎄 그 사람이 그랬다니까?” 이런 간단한 한풀이조차 어디 가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얼마나 대수로운 일이라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를 하려면 


1. 내가 커밍아웃해야 함 

2. 커밍아웃이 성공적이어야 함 

3. 상대를 아웃팅 시키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한풀이해야 함 


이라는 지지부진한 과정이 (또) 필요하다. 나 참. 


항상 짝사랑만 하다가 양방향으로 마음을 나눈 상대가 처음이었던지라 관계가 파탄 난 후 나는 감정이 많이 격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2n년 평생 못하던 커밍아웃을 미친 듯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커밍아웃한 친구들은 힘들어하는 나를 잘 달래주었다. (돌이켜보면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그렇게 내 주변엔 커밍아웃한 상대와 하지 않은 상대로 나뉘었다. 물론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내 생에 이만큼 큰 변화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커밍아웃해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친구들은 고맙게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오롯이 이해하긴 힘들었을 거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교류를 넘어 내 상황과 감정을 여러분에게 말하기까지 어떤 지지부진한 과정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관계가 필요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학교 커뮤니티에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들 사람을 모집하는 글이 올라왔다. 망설임 없이 댓글을 달고 상대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성소수자 동아리 부회장이 되었다(?). 다소 갑작스러운 전개이지만, 창립 멤버가 다섯 명이라 회장, 부회장, 홍보부장, 회계부장 등 나누어서 역할을 맡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한 줌 퀴어. 어쩌겠어요.)     


동아리에 사람이 점점 늘며 ‘개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관계가 늘었다. 물론, 성소수자 당사자가 가지는 정체성은 너무도 다양하기에 서로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스스로 모른다는 걸 알고 그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도 덩달아 성장할 수 있었다.     


진정, 일상의 지반이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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