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미필적 불의(未必的 不義)의 관계망(關係網)

선행과 정의 그리고 미처 생각 못한 그림자

by 감자밭


이 이야기는 남미에 살았던 어떤 이의 추모비 문구에서 시작된다.



"한 없이 자애로운 후안 데 포레스(Juan De Porres)선생께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 병원을 세웠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 때문에 생겨났다."




2022년 3월 2일 아침, 여든여덟 유복환 씨가 아늑한 엔틱 거실에서 산미가 일품인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 한잔에 곁들인 비스킷을 집어 들며 TV 뉴스를 보고 있다. 그의 얼굴, 여유와 만족의 기운이 살짝 비친다.



<YTO 뉴스>

앵커 : 어제 성남시 분당구에서 재단법인 '재현병원' 개원식이 있었습니다.


(이하 재단법인 유복(재현병원) 이사장 기념사)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상생하는 복지사회 '를 모토로 각계각층의 온정의 손길을 소중히 모아 오늘 개원하게 된 우리 재현병원은 우리 사회의 어려운 모든 분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회복지 전문병원으로서..."


앵커 : 기초생활수급자 및 독립유공자와 후손 등에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재현병원은 LO상사 명예회장 유복환 씨와 사회복지공동모금 공동으로 출자하여 설립되었으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에 대한 의료공백 해소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OOO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103주년 삼일절을 맞아 개원한 재현병원과 병원 재단의 사회 기여활동에 대해 온 국민을 대표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재단법인 '유복' 주도로 운영되는 재현병원은 향후 차상위계층까지 무료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며, 우리 사회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유복환씨가 소파 깊숙이 몸을 뉘인다.

머릿 속으로 지난하고 어려웠던 과거가 스친다.

흑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도 못 들어갈 뻔한 것을 아버지께 매 맞아 가며 석 달을 버텨 겨우 입학한 학교에서 달에 5원하는 월사금 상습 미납자로 낙인찍혀 선생님에게 매질당하던 유년시절이 떠올라 한동안 눈을 지그시 감았다.

중졸로 LO상사 사무보조원으로 취직했던 일과 회사일 하며 검정고시로 졸업한 고등학교며 주경야독하며 야간대학 다니던 일이 떠오르던 무렵에는 맨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이 막혀 왔다.

'참 어려운 시절이었지... 몸뚱이 하나, 의지 하나로 여기까지 온 내가 이니었던가..'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때, 유복환 씨는 '그래도, 이리 이루어내지 않았나 말이야.. 나는.. 그래.. 나는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

회한인지, 성취의 기쁨인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왔다.



1943년 3월 25일.

전라도 곡성 석O소학교 조선인 교사 이주영 씨는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주임선생의 호출을 받았다.


'아.. 또 그일 때문인가.. 당최 숨을 쉴 수가 없구먼..'


이주영 선생은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그 시기, 더구나 조선인으로서 어렵게 공부하여 사범학교를 졸업한 영재였다. 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동료 선생들, 특히나 주임선생 아이카와 다이스케(相川大輔)에게 날마다 멸시를 받고 있던 터였다


"이선생, 이리 앉으시오. "

주임선생이 턱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조선말로 다짜고짜 질책했다.

"아니, 이선생.. 내가 몇 번을 말하오? 선생 반에 몇 달째 월사금 밀린 학생 알잖소? 뭘 그리 흐리멍텅하게 하냔 말이오? 됐고, 이번 주 말까지 받아내시오. 내가 그놈 월사금 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오. 원.. 그리고.. 그.. 창씨개명을.. 안 하는 이유는 뭐요? 선생이.. 언제까지 이 학교에.. 그 조선 이름으로 일할 수 있을 수 있을 거란 생각하는 건 아니지요?"


이주영 선생은 죽어가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임선생님.. 제가 이번에는 꼭 받아내겠습니다. 암요. 이번엔 봐주지 않을겝니다. 꼭요."


뒷걸음 치듯 나온 이주영 선생은 생각한다.

'내 이놈.. 내 가만두나 봐라.. 내가.. 내가.. 나 이주영이가 이런 꼴을 당하게 해?'


드르륵..

10살 유복환의 반의 미닫이 문이 열린다.

" こっちに(이리와), 유복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매질을 했다. 설명 따위 필요 없다. 그가 "월사금 내일까지 꼭 낼게요 선생님."이라고 할 때까지..


이주영 선생이.. 그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

문간부터 느껴지는 밥 내음과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이내 마음 좋은 아저씨 얼굴이 되돌아왔다. 여적 성난 얼굴이었음에 멋쩍어하면서..

토끼 같은 자식들 입으로 밥 숟갈 드나드는 것을 보았으나, 아버지가 나타나니 득달같이 뛰어와 안긴다..


'그래.. 이 토끼 같은 자식들..'


마누라가 건넨다.

안방 이불속에 혹여나 식을까 두려워 감추어 놓은 놋그릇을..


그날 밤, 이주영 선생은 무언가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그래.. 마누라 거친 손.. 더는 고생 안 하게 하고.. 토끼 같은 작은 입에 밥 숟가락 넣을 수 있으니.. 됐다.. 그래.. 이거면 됐다... 덕수 이 씨.. 이순신 장군 후손으로서 이만치 하면 되었다.. 애먼 세상 이 만치 버텨내면 되는 거겠지..

우리 주임선생.. 천대보 형님도.. 그래.. 그 양반도,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러고 있어..'



1973년 11월 25일, LO상사

'이제 한 달 뒤면 승진심사다. 나는 꼭 해낼 거야.. 이번 보고서는 완벽하다고!'

깊은숨 한 번 쉬고 영업부장 사무실을 힘차게 두드리는 정해주 과장이었다.


들어서니, 유복환 과장과 영업부장 최부장의 '하하 호호'하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형님, 이번에 저 한번 밀어주세요.. 아시잖아요? 저.. 한다면 합니다.. 이번에 사장님 만나서 제가 다 설명드렸어요. 하하하.."


정해주 과장이 들어서자 대면 대면해지는 부장 사무실의 그 풍경이..

정과장 눈에 낯설지 않다.

정과장이 "부장님, 말씀 중이시면 다음에 들어올까요?"라고 부장에게 말을 붙였을 때, 부장은 턱으로 서류더미를 슥슥 가르쳤다.

"아..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이번 기획안 심혈을 다해 작성했습니다. 검토해 주시면.."

정과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부장이 말했다.

"암.. 암만.. 정과장 기획능력은 내가 잘 알지.. 놓고 가게.."

12월, 승진 발표에서 정해주 과장은 이름을 보았다.

부장님이 된 입사 동기 유복환의 이름을. 고학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일 마치면 야간대학까지 다닌다는 유복환 과장의 이름을.. 부장님 사무실에서 '히히 호호'하던 그 자식의 이름을..

그리고 그날 저녁, "여보 고생했어요. 오늘은 장에 나갔더니 튼실한 닭도 엄청 싸지 뭐예요?"라며 입만 웃고 있는 아내를 맞았다.

그 밥상.. 식사를 마칠 때까지 말이 없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이리저리 굴리고는 있으나.. 아이들도.. 말이 없다..



2019년 9월 어느 날 에티오피아 남부 시다모 커피농장(예가체프 커피 산지)

"어이, 헤보샤! 얌마 헤보샤!"

열 서너믄살 아이를 작업반장이 불러댄다.

이내 성난 얼굴로 그 아이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찰싹' 매질을 한다.

"얼마나 맞아야 제대로 딸꺼야? 쓸모없는 새끼.."


매질을 당한 아이의 눈빛에는 으레 있을 법한 흔들림이 없다.


매질을 한 작업반장의 낯에도 죄의식은 없다.


얼마 후 작업반장이 저 멀리 나타난 노랑머리 관리자에게 뛰어간다.


머리가 땅에 닿듯이 조아리는 모습을 헤보샤는 멀끄러미 바라본다..


그 아이, 머릿속에는 '오늘 내가 가족에게 가져다 줄 빵과 얼마간의 과일'이 떠오를 뿐 매질당한 등도, 가슴 아픔도 없다.. 이제는..



소파에 깊이 기대어 있던 유복환 씨가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테이블 위에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왠지 모를 충만함이 느껴진다.


'그래..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이리 쌓아 놓았지! 나는 사회복지를 위해 거액을 내놓을 만큼의 덕까지 갖추게 되었지.. 모두 내 값진 노력의 결과로 말이야.. 암.. 그럼..'


커피 잔이 놓인 곳 옆에는 고급스런 장미문양과 십자가로 장식된 묵주와 아직 열어 보지 않은, 매달 받는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가 놓여 있다.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