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가 되는 그 숲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욕심
삶은 계란.. 아니, '기억'이다.
삶은 계란이 먹고 싶다는 느낌적인 느낌에 홀려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아무것도 없기에 입맛 쩍 다시고 이것저것 생각의 실타래를 엮다가 그 끝이 '삶과 기억, 존재의 이유'에 닿았으므로 오늘은 이 이야기를 짓기로 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출생의 순간, 백색의 공허와 희뿌연 불확실의 세상에 발을 딛는다. 의아하고 생경한 그 공간에 출생의 고통이라는 작은 풀이 돋아나고 그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이내 '엄마'라는 나무의 묘목이 생겨난다. 잡음과 혼돈의 시간이 얼마간 흘러 '아빠나무', '형제 나무들', '할머니 나무', '할아버지 나무'가 심긴다. 서서히 뿌연 세상이 얼마간 명료해지면 '나'라는 나무, 다른 이름으로는 '자아(自我, ego)'라는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나무, 생각해보니 이전부터 있었던 나무인데, 이제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보니 '엄마 나무'가 우러러 보인다. 언제 이렇게 크게 자라났는지 세상에서, 그 공간에서 가장 크고, 따스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포근한 그 나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정해 본다. 둘러보니 '아빠 나무'도 꽤 크게 자라났다. 이 나무는 잎이 푸르고, 든든한 생김이 맘에 든다. '하늘'이라는 공간이 열리고, 연한 푸르름이 가득 차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유년의 숲'이 생겨났다. 삶의 시작이자 기억의 시작 말이다.
알게 모르게 시나브로 심기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유년의 숲' 가에 흐르는 작은 냇가 건너에 '책가방과 학창 시절의 숲'도 푸른색이 유독 창연한 '청춘의 숲'도 생겨나고 야근과 생계의 풀과 나무로 가득 찬, '인생은 실전이야 쨔샤 숲'을 지나 어른이라서가 아닌 늙어가는 길목이라서라는 뜻의 '장년의 숲'을 지나 진짜 늙어서인 '노년의 숲'에 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쯤 되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닌 폭력으로 느껴지기도 할 테지, ‘시간의 횡포’.
‘일반적’이라고 할만한 인생은 뭐 대략 이렇게 흘러가지 않겠나 한다. 불우한 유년, 결손 가정, 불의의 사고로 얼룩이 진 생이 지어내는 숲은 모양과 구성이 달리 보이게 되겠지만, 어떻든 중요한 것은 생의 본질이라는 것은 결국 ‘기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이 내게 보여주는 것이다. 보이는 대로 생각하며 ‘아무것도 아닌 하루들’을 보내고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 내면의 ‘기억의 숲’에는 하나, 둘 나무와 풀들이 생겨난다. 또, 어느덧 뒤돌아 보면 파도에 쓸려가는 발자국처럼 원래 없었던 듯 사라져 버리는 나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 나무’, ‘할아버지 나무’처럼 기억은 선명하나 '잿빛'으로 변한 채 남아 있는 나무들도 생겨나고 말이다.
생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 꺼내어 보면 아름답기도, 사랑스럽기도, 때론 아리기도 한 ‘기억’이다. 그래서 그 기억이란 것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이유이자 증거가 아닐까 한다. 결국 남는 것은 기억일 뿐일 테고, ‘나’ 자체가 다른 이의 기억의 숲에 사는 한 그루 나무일 테니까.
노년의 숲에 다다랐을 때, 거닐고 있는 그 숲을 빼곤 나머지는 온통 회색 빛 아련함일 테지.
어느 날, 알았던 몰랐던 죽음이라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내 마음속 기억의 숲 나무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본래의 백색 공허로 돌아가게 되겠지.. 다시 공허의 한가운데에 서서 생경함에 두 눈 껌뻑이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내 생이 다했을 때, 나는 누군가의 기억의 숲에 한 그루 잿빛 나무로 잠시 지내다 언젠가 그들의 숲이 사라져 나를 기억하는 모두가 백색 공허를 맞이하면 그때야말로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서 꿈꿔본다. 언젠가 ‘더 이상 내가 없는 시간’이 왔을 때에도 내 글이, 내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 담은 저작이 오래도록 누군가의 손에 닿아 한순간 전구가 쨍하고 켜지듯 되살아나 그 사람들의 기억의 숲에 살아가게 되기를..
오래 기억되고픈 마음에, 꽤 오래 존재하고픈 욕심에 꼼수 한번 부려 보련다.
아직은 내 글이 백지에 양초로 쓴 것 마냥 눈에 잘 들지 않으니, 다른이들의 기억의 숲에 살게될 정도가 되려면 그 꼼수,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겠다. ㅎ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