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의 계절

때가 되어야 알게 되는 것들

by 감자밭

바다는 짜고 그 속에 살던, 내가 자주 먹는 생선회는 슴슴함과 한점 고소함이다.


어릴 적 나는 바다에서 한바탕 놀고 나면 피부가 푸석푸석해지거나 하얀 소금기가 버짐처럼 피어나 싫었다. 또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자주 먹는 생선회가 ‘아무 맛이 안 나서’ 아직 잘 못 먹는다.


어린 시절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면 주로 이런 기도를 많이 했다. 첫째는, “이 세상 모든 마귀와 악마를 없애 주세요’. 둘째는, “세상 모든 물들을 따뜻하게 해 주세요”.

첫 번째 기도는 세상 모든 악한 존재가 사라져 세상에 선함만이 가득 차 행복하길 바랬기 때문이고, 두 번째 기도는 물놀이 참 좋아했던 내게 차가운 냇물이나 계곡물, 바닷물은 늘 한 점 아쉬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안다. 바다가 짜니까 그 소출인 소금으로 인해 우리 식탁이 풍요롭고, ‘시원한 바닷물, 냇물, 계곡물’이 있기에 우리에게 여름내 ‘피서’라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거기에 더해 ‘선에게 있어 악은 필연’ 임을..

선과 악은 서로 없으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색으로 치면 ‘보색’이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의 계절들을 돌아보면, 어린 시절에는 ‘호기심의 계절’, 20대에는 ‘호기와 의욕의 계절’, 30대에는 ‘과로, 피로, 분노의 계절’이었다.


이제 마주한 계절은 ‘그러려니’의 계절이다.


지난날의 아쉬움도, 괴로움도 아직은 다 벗겨내지 못했으나 그것들이 내 생에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고개 끄덕임으로 인정할 수 있는 계절을 맞이했다. 시나브로 벗겨지고 멀어지는 회환과 후회, 아쉬움들을 ‘인정’하기 시작한 나와 내 주변 공기들 말이다.

마주했을 때는 버겁고 힘들었던 일도, 슬프고 아팠던 기억도, 가끔 꺼내 보면 속 아린 안타까움도 모두가 다 그만의 역할과 가치가 있었음을, 그래서 오늘의 내가 이러한 모습으로 두발 딛고 세상을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려니’의 계절은 한결 산뜻하고 마음 가벼운 계절이다. 뭐든 ‘그러려니’, ‘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할 수 있는 계절이니 말이다.

다만 부작용이 있다면 맛난 음식을 마주하면 이 음식들이 내 앞에 놓일 때까지 겪었을 희생과 노력들이 보이고,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이를 보면 그가 겪었을 고통과 고뇌의 시간들이 느껴진다는 정도.


요사이 무척이나 마음이 가볍다. 계획했던 일이 맘처럼 쉽게 풀리지 않아도, 갑작스럽게 안타까운 경우를 당해도 기쁨과 슬픔의 간극은 예전만 못하다. 당장 내일도, 아니 한 시각 뒤도 모르는 게 당연한 나라서, 오히려 그래서 기대하거나 셈법 복잡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으니 한결 산뜻하다.


언제까지일지 모를 이 계절이 끝나갈 즈음에는 보다 아름다운 평화와 온유의 계절이 찾아오리라 믿어본다.

어차피 어찌 될지 모르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언젠가는 여러 계절을 지나 온 우리 아이들도 나와 함께 짠물에서 난 소출에다 소주 한잔 즐겁게 나눌 수 있는 때가 오겠지. 그들도 ‘아무 맛없던 것이 슴슴한 고소함의 매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때가 오겠지.


‘그러려니’의 계절 한가운데 서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스쳐가는 이야기들을, 장면들을 줍는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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