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이스카리옷을 위한 변명

우리 생을 가로지르는 ‘운명’이란 것에 대하여

by 감자밭

안 본 사람도, 끝까지 읽은 이도 몇 없지만 그럼에도 유사 이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책은 뭘까?


성경(Hloy Bible)이다.


성경이라는 유서 깊은 이야기 책에는 주인공인 예수님과 조연으로 등장하는 무수한 예언자와 유명한 12 사도가 등장한다.

베드로처럼 유명한 인물도 있고, 성경을 한 번이라도 숙독해야 머리에 남는 조연들도 여럿 있다.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

예수님을 대사제들에게 넘겨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희대의 배신자.


지옥에나 떨어져야 할 이 배신자에 대해 깊게 사유해 본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배신자고, 나쁜 놈이니까.


오늘, 예수님 시대에 히브리 계열 이름 중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던 유다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숙명과 벗을 수 없는 운명의 무게를 느낀다. 일말의 연민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람, 그이 인생의 양면(兩面)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잘 알려진 그의 일면은 이러하다.


예수님의 제자, 어떠한 이유로 당시 기득권이었던 대사제들에게 은화 30닢에 스승이자 하느님의 아들을 팔아넘긴 배신자. 그럼에도 뒤늦은 후회로 목메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 그 배신의 대가로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라 여겨지는 자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이면은 또 이러하다.


성경에는 '...말씀이 이루어지려 그리되었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예수님도 최후의 만찬 이전부터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임을 알았고, 또 인간적으로 괴로워했다.

그런가 하면 복음서의 많은 부분에서 그의 배신이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여러 차례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려고 로마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낼 때,

예수님께서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배신을 용인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살펴보자면, 유다의 그 배신이 없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 사업'도 그 이전의 수많은 예언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유다가 아닌 다른 배신자가 또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유다의 배신은 '인류 구원 사업의 매개'이자 '필요조건'이었다라면 과한 것일까?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메시아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내 몰았기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아마도 영원토록 저주받는 영혼이 되고야 말았다.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

메시아를 배신하고, 죽게 만든 불구대천(不俱戴天) 대죄인의 운명을 가진 자.

그의 죄는 배신일까? 기구한 그의 운명일까?


그러한 연유로, 나는 생각한다.


신께서 지으신 이 우주에 숨 쉬고 있는 한 우리 모두 신의 계획, 어쩌면 '운명'이라 불러야 하는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 허락된 그 운명이라는 것도, 신께서 계획하신 미래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유다의 예에서 처럼,

우리가 어떤 쓰임을 위해 예비된 영혼인지 우리 스스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단에 심긴 보기 좋은 화초를 바라보는 것과 신께서 지구별에 복작거리며 사는 우리를 내려다보심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매 순간 내 '자유의지'로 살아왔다 생각하지만 각자의 생이 그려낸 의도치 않은 희극 또는 비극의 개인사를 되돌아보자면, 우리는 과연 생을 가로지르는 운명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긴 한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0년 전의 내가 생각한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르며, 스쳐간 무수한 인연들과 그 인연들이 빚어낸 우연들이 얼마나 얽히고설켜 있는가 말이다..


나는 모른다. 내 인생의 침로(針路)도, 목적지도..


그저 하루하루가 평화로 가득 차기를, 내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과 건강을 향유하기를,

그리고..

'보시기에 아름답기를'...


그저 '인간적인 마음'으로 바라고 바랄 뿐.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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