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형 낙천주의

살아남기 위한 가성비 높은 감정 소비법

by 감자밭

갈등(葛藤)이라는 말은 ‘칡과 등나무’라는 뜻이다. 범위를 넓혀보면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얽힘’이 되고, 더 넓혀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견해 차이, 이해 차이로 인한 충돌’의 뜻을 꺼낼 수 있다.

어쩌다 두 식물의 이름을 붙여 놓은 낱말이 ‘충돌’, ‘다툼’의 의미가 되었을까..


똑같아서다.


둘이 똑같으니까 싸우는 거다. 칡도 등나무도 무엇이든 닿으면 휘감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뒷산의 칡과 등나무는 오늘도 서로를 감아대서, 서로를 옥죄여서 결국을 풀어낼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닿고 마는 것이다.


의미로 가득 찬 세상은 버겁다.


더구나 부정적인 사인(sign, indication)들이라면 더더욱.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잠들 때까지 내 안을 시끄럽게 가득 채우는 모든 것들이 다 ‘의미’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그 의미들을 나에게 결부시킨다. 이를테면, 길가다 자그마한 돌부리가 발끝에 차이기라도 할라치면 ‘아.. 웬 돌멩이가.. 오늘은 일진이 좀 사나우려나?’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시간이 얼마간 흘러 뭐 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라도 만난다면 아까의 그 의미는 증폭되기 마련.


부정적 사인으로 시작된 부정적인 마음에 누가 말이든 표정이든, 아니면 불특정의 아니꼬움을 내게 보낸다면 이제, 시작된다. 그 ‘갈등’이라는 것이..

서로를 탐색하다 기회를 엿보아 상대가 숨을 못 쉬게 감아버린다. 서로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악의를 품고. 그래, ‘똑같아서 생기는 파국이 갈등’이라는 것을 서로 다투어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동안 그 갈등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살며 경험한 대다수의 갈등 상황에 ‘내가 정당하다’라는 생각이 항상 앞섰으니까. 그리고, 갈등이라는 것도 나의 논리와 전투력으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참 많이 다투고, 참 많이 으르렁대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이라고 내 감정과 나를 둘러싼 ‘의미’들, 특히나 부정적 의미와 사인들에서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도망갈 방책은 하나 찾아냈다. ‘짬바’랄까..


‘생존형 낙천주의’


똑같으니 싸우는 것이고, 똑같으니 갈등이다.

그래서 돌아가기로 했다.


상대가, 상황이 나를 감아 옥죄이려 하면 살짝 피한다. 그리고 ‘우쭈쭈’성 동의 내지는 ‘결의에 찬 존경의 눈빛’을 흘리며 튄다. 여기서 마무리 지으면 내상(內傷)이 남을 수 있으니, 긍정의 마인드 컨트롤 시간을 잠시 갖는다.

‘착한 생각.. 착한 생각..’ 단순한 게 또 사람이니 금방 또 잊힌다. 그리 한 겹 두 겹 쌓는 노력을 하다 보니 지금은 제법 낙천주의자다.


현실은 시궁창이고, 나도 눈이 있으니 모르는 바가 아니나 안들 무엇하고 , 또 그것에 의미를 더해보아야 무엇이 바뀌겠는가..


아픔의 이유는 명백하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의 원천과 그 전개 과정, 그리고 나의 행동과 반응들이 그 아픔을 어떻게 증폭시킬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기 싫어 오늘도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모기에 물리면, ‘아.. 참.. 힘들게 산다.. 이거라도 빨아야 너도 사는 거겠지..’한다.

복권도 투자라 생각하며 두어 장 사고는 ‘낙첨입니다.’를 확인하는 순간.. ‘그래.. 너는 나에게 설레임을 주었어.. 오늘도 “열심히 일하시오”가 당첨되었으니, 그리 해야겠구먼!’하고 생각하기로 한다.


갈등할 시간에, 세상에 무수히 가득한 부정적 의미들과 아픔의 시간에 함몰되느니 내 안으로 난 길, 나만의 은밀한 다락에서 ‘착한 생각.. 착한 생각..’하는 게 낫다. 가성비 높은 감정 컨트롤이다.


가진 것 없으니 감정이라도 가성비 있게 아껴본다.

아껴보니 또 ‘긍정’이라는 이자도 붙더라.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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