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발목

타고난 것과 가지지 못한 것

by 감자밭

아들과 뛴다.


시간이 날 때면 아들과 남대천변을 뛴다.

내가 지금까지 군 생활하면서 느낀 바 있어 아들에게 권한 군 특성화 고등학교 입시 준비차 뛰는 것도 있고, 아들과 무언가 함께해 본 것이 없다는 것을 또 깨달아하는 것도 있다.


나랑 아들은 둘 다 잘 못 뛴다.

나야 군 생활하면서 매년 '생명 연장'해야 하니 그나마 '생계형 뜀걸음' 수준 정도 꾸역 꾸역이지만..

아들은 아직이다. 아직 뭐 또래만큼이나 뛰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같이 뛰다 아들이 발목과 무릎이 아프다고 섰다.

다그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아쉬움은 있었기에 언뜻 돌아보니 칠부바지 아래 아들의 그 발목이 굵다.

나처럼.

굵은 발목의 의미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발목, 무엇을 하든 발목을 잡을 발목이다.

뛰어도 뜀걸음 실력이 잘 늘지 않을 발목이고, 공을 차도 남보다 잘하기 힘든 발목이며, 잠시라도 운동을 쉬면 비만이 찾아오고, 운동실력을 뒷걸음치게 하는 그런 발목이다.


화가 났다.

뛰다 서버린 아들이 아니라 그 발목을 넘겨준 내게.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물려준 것도 아니고, 도베르만처럼 으르렁대는 근성을 물려준 것도 아니고, 내가 겪었던 일을 또 겪게 하고야 말 핸디캡을 물려준 사실을 목도하니.. 속이 시끄러워졌다.


아쉬움은 아니다. 단전에서부터 차오르는 분노다.


어릴 적 나는 '깍두기'였다.

깍두기가 뭔지도 모를 시절부터 동네 또래며 형들에게 나는 깍두기였다.

시골 사는 순박한 아이들 사이였으니 그나마 깍두기라도 해 먹었을 것이다.

놀이를 하면 운동 잘하는 둘째 형과 나는 1+1=1으로 놀이에 끼었었다.

깍두기의 좋은 점은 놀이에 끼워준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어디에 끼었는지 본인도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다는 거다.


그런 깍두기가 군대에 이리 오래 붙어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초임 장교 시절에는 배려심 많은 병사들이 인사이드로 밀어주는 볼에 발을 가져다 데는데 급급한 수준이었고, 테니스며 족구 등등 뭐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날마다 찾아오는 체력단련 시간이 고역이었다.

근 20년 동안 말이다.

힘은 세서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체육대회 씨름에 출전하는 것 외에 운동으로 내세울 것은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

업무능력은 좀 부족해도 운동 잘하는 동료들이 윗분들과 '하하호호'하는 모습을 보며 참 부러워했더랬다.

때론 운동 잘하는 이들이 가볍게 내뱉은 것들이 내 마음에 화살이 될 때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티끌만 한 사소한 일상에서 조차 결핍과 분노를 느껴야 함에 일종의 좌절감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


깍두기의 삶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수준을 높여보라 다그쳐야 하는 것일까?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 절대음감을 타고나 TV 속 명 연주가의 손놀림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사람, 안 배워도 뻥뻥 공을 내지를 수 있는 사람, 아니 그저 평범함의 범주에 있는 이들에게 조차 부러움과 질투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나의 그 질투심에 또 부끄러워졌다.


산다는 것이 늘 불공평하다는 진리를 깨친 지 오래지만, 그것을 겪어내는 일은 늘 아프다.


곰곰이.. 나지막이..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을 얼마간 가졌다.

그래, 뛰자. 똑같이 생겨먹은 아빠와 아들, 할 수 있는 일이 마르고 닳도록 뛰는 것 밖에 없다면 그리 하자.

물려준 것이 없으면, 짐이라도 나누어 짊어지자.

가다가다 못 이루어 내면, 아빠와 함께 노력했던 기억이라도 심어주자. 그 기억이 내가 그리 했던 것처럼 꾸역꾸역 버텨내는 힘이라도 줄 수 있도록.


그래, 하는데 까지 해 보자.


"아비가 되어 미안하다."라는 사극 대사가 떠오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끝끝내 이런 패배의 말은 하지 않을 테다. 억울해서 못하겠고, 그 말이 화살이 되어 아들 마음에 꽂힐까 못하겠다.


대신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라 말해 주겠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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