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ry on Carry on
몰라도 계속 쭉 가보는 수밖에.
나는 모른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심지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도.
거창한 이유야 수만 가지 쉬이 댈 수 있지만 그 끝이 공허한 것은.. 나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가을빛 창연한 하늘에 날아가는 새들도 무엇 때문에 하늘을 날아야 하는지 알까?
나 보니 새라서 날긴 하는데, 그자들은 또 두발 튼튼한 하늘 아래 우리들이 부러울지 모른다.
새들은 하늘을 날 때마다 두렵다. 심장이 콩닥 거리는데, 참고 나는 거다 매일매일을.
(책에서 과학자 아저씨가 알려줬다. 내가 다 물어봤다.)
고개 돌려 빠알간 가을꽃 보고 있자니 또 궁금하다. "너는 왜 거기 꽃으로 있느냐?"
당황하겠지 그 꽃도.
거창한 이유야 많겠지만 솔직히 나 모른다.
인간은, 아니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행복감과 만족은 경험할수록 역치가 높아지고, 그래서 또 다른 기쁨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아픔과 고통은 그것의 빈도가 잦아질수록 역치가 낮아진다. 그래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것도 다 책에 다 물어봤다. 과학자 아저씨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더라고..
그래서 행복의 파랑새는 그리 만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이다.
하버드 나온 또 어떤 아저씨가 무려 50여 년간 관찰해 보니(전향적 성인발달 연구라 카더라) 결국 행복은 먹고, 자고, 싸는 일차원적인 것이라 한다.
삶의 의미와 이유는 놀랍게도 살아가는 동안 그때 그때 바뀌는데, 먹고 자고 싸는 행복은 뭐 변화 없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하대.
그럼 나 여기 왜 서 있는 건가..
행복이 일차원적 기쁨에 있다면 오늘 꽤나 행복했다. 잘 먹고 잘 쌌으니까.(오늘 3번 쌌다)
아.. 그러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고상한 삶의 이유를 대어보니 아.. 떠오른다.
'시궁창'이라는 맵시 안나는 그 단어..
몰라서 모른다 답하는 내 인생에 자꾸 되지도 않는 질문 그만해 보기로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진지한 채 살아가는 것도 그만 두기로 한다.
어차피 모를 거 눈앞의 낮은 행복들 열심히 주워 담아야겠다.
몰라도 뭐 어쩔 수 있나 났으니 살아가고, 그러다 한번씩 흘겨 웃는 수밖에..
그려.. 그리 그리 살아 보자.
혹시 아는가? 어떤 아저씨가 또 슬쩍 알려줄지..
계속 가 보자. 두리번거리며, 입맛 쩝쩝 다시며 뚜벅뚜벅..
carry on.. carry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