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놈 ‘될’

서로를 인정해야 하는 지성인의 자세와 그 이유에 대해

by 감자밭



사람은 타인에 의해 절대 바뀔 수 없는 존재다.


내가 그렇고, 지금 이 글을 눈에 담고 있는 그대가 그렇다.

짐짓 생뚱맞은 이야기에 고개가 갸우뚱하다면 지금, 각자 가슴에 손을 얹어 보면 쉽게 알게 된다.

나를 ‘교화(?)’ 시키려던 부모와 스승들의 노력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를 떠올려 보라.

‘어? 나는 아닌데?’하는 독자께서는 이 글을 끝까지 일독해 보길 권한다.


결혼을 하고 나와 닮은 아이를 낳아 이름 지어 부르고, 아내와 또 남편과 살 부비며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진리가 ‘어쩜 저리 한 가족인데 이리도 다를까?’가 아닐까 한다. 가족은 닮았다. 지금 둘러보니 안 닮은 것 같아도 남들은 다 안다 그대들이 닮았다는 사실을.

하지만 닮은 것이 꼭 ‘같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과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타인과 한 번도 ‘접촉’해 본 일이 없다. 태곳적 우리 조상부터 당장 같은 집에 함께 사는 이들 조차. 과학적으로는 너와 나의 원자와 원자 간의 전기적인 ‘밀어냄’을 우리의 뇌가 ‘접촉’했다 믿기 때문이란다.

뭐, 이런 깊이 있는 지식의 향연에 기대지 않더라도 우리 사이의 ‘얇은 막’에 대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어린아이는 나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도 자신이 아플 때 저 대신 아파 줄 수 없음을 처음 느꼈을 때, 어머니조차 결국 타인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 외에는 결국 타인일 수밖에 없구나’를 깨치고, 비로소 자아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시선을 돌려보자.


책을 읽을 때, 누군가의 강연을 들을 때, 심지어 용한 점쟁이에게 내 인생의 미래를 점쳐보라 복채 몇 푼 건네었을 때 우리가 본능적으로 꼭 하는 것이 있다.


‘그 속에서 나를 찾는 행위’


책을 읽을 때 무릎을 탁! 치고 공감하는 것, 강연을 들을 때나 사제의 강론을 들을 때(때론 불법, 설교) 머릿속을 강타하는 그 깨우침과 점쟁이의 점괘를 들을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나’와 ‘내 내면의 생각’ 또는 내 ’ 자아‘가 평소부터 떠들어대던 그것을 발견한다.

그 발견이 우리를 흡족하게 하고, 그 길로 나를 이끈다.

그리곤 생각하겠지. ‘훌륭한 책(강연, 강론)이구만! ’


그렇게.. 이 우주에 79억 개의 세상이 태어난다.


옆에 있는 누군가와 같이 숨 쉬고 있어도 우리는 결국 딴 세상 사람인 거다. 다른 것을 보고 있으니까.


그러니 나는 타인을 절대 바꿀 수 없다.


내가 바꾸려 하는 상대는 나의 말을 듣고 그저 그의 세상에 원래부터 있던 것들을 발견했을 뿐이고, 그 발견의 산물이 나에게도 있으면 그가 나에게 동조되었다고 ‘착각’할 뿐.

애초에 상대의 내면에 ‘발견할 꺼리’가 없으면 그가 발견하지 못할 테고, 그럼 또 ‘저 인간은 어째 저리 말귀를 못 알아듣나.. 하..’하게 되겠지..


세상에 사람이 79억 명이란다. 그럼 ‘자아’의 씨앗도 79억 개고, 공교롭게도 79억 개가 모두 다르다. 그 구성부터 내용물까지.


시간 내 책을 읽고, 좋은 강연을 보고하며 돌아보니 그렇더라.. 결국 나는 내 내면에 있는 것들을 ‘줍줍’하고 있을 뿐이었고, 내 속에 없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아니, 받아들여 내면화할 씨앗이 없는 것들은 들어도, 보아도 잊힐 뿐이다.


쉼호흡 깊게 한번 하고, 지난해 읽었던 책을 하나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기억에 남는 것들을 확인한 후 책을 펼쳐보자. 머릿속 책과 지금 펼친 책은 다른 책이다. 그 책에서 나에게 맞는, 내 맘에 드는 것들을 기억했을 뿐.

설령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애써 머릿속에 욱여넣었던들 결국 잊힐 뿐인 거다.


될 놈 ‘될’


성인군자의 자식도 망나니인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희대의 악녀로 유명하다.

소크라테스는 집에 가서 유난한 아내에게 ‘교화’ 한 번 안 해 보았을까?

‘산파식 화법’으로 진리를 깨치려 해 보았던들 ‘내가 산파냐?’며 삼단논법식으로다 싸대기 세대나 맞았겠지..


그래서, 오늘 이 두서없는 글의 결론.


하나, 어차피 될 놈 ‘될’이니 나는 대략 ‘될 놈’에 속해 있다 믿어본다.


둘, 누가 되었든 내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이가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자.

어차피 방법 없다. 차이를 인정 하는 것이 사랑이고, 또 인정해야 사랑할 수 있다.


셋, 타인을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고, 대충 합의보자(화합하자).

쌍욕은 정신건강에도 해롭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된다.


이리 하기로 하고, 일말의 기대를 갖고 또 책장을 넘겨 본다.

요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란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미발견 보석’들을 캐고 있다.


아직은 못 캐낸 ‘보석’들이 있을 것만 같아서…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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