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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림 Jun 28. 2022

미완의 아름다움

완성의 기점

고등학교 때 저희 반에서 돌려 읽던 판타지 소설이 있었습니다. 당시 레전드라 불리던 작가의 대표작이었는데 스토리가 주는 흡입력이 장난 아니었어요. 덕분에 다들 십 수권의 시리즈물을 하차 없이 며칠 밤낮으로 완독 했습니다. 저도 그때 처음으로 판타지 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요.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무림 고수가 되어 가는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 같더라고요. 감정 이입되면서 제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쾌감도 느끼고요. 그렇게 시리즈 완독을 향해 달려가던 중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어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책을 상당히 읽는 편이었는데 다른 분야의 서적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었거든요.


‘절대', '지존', '영웅', '전설'


판타지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익숙한 단어일 텐데요. 저는 당시 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해본 관계로 위의 단어들이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위 단어들은 주로 주인공이 역경 속에서 보상 같은 능력 향상이 이뤄질 때 자주 보였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어요. ‘절대', '지존', '영웅', '제일', '전설'이란 단어는 보통 사람인 제가 현실 속에서 사용할 일이 별로 없는 개념들이더라고요. 영원히 변하지 않는, 99.999% 아닌 순도 100%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요. 이런 무지막지한 의미를 품은 개념들을 자유롭게 서사할 수 있다니요. 이게 바로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완성’


제 그림을 그리면서 저도 완성이란 역시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생각했더랬습니다. 왜냐면 저한텐 ‘절대', '지존', '영웅', '제일', '전설'과 같은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다 느껴졌거든요. ‘완전히 다 이루는 것’이 완성이라는데요. 그림을 그리면서도 언제 멈춰야 하는지, 언제까지 그려야 하는지 그 기점을 알기란 참 어려웠죠.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삼일 밤낮 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림을 완성했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완성에 목을 매고 있을까. 강박증인가?


그러다 주변을 돌아보니 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완성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함께 그리는 동료 작가들 가운데서도 쉬이 만족하지 못하는 성질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단연 그림 그리는 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본인만의 기준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제 어머니를 보면서 새삼스레 느꼈달까요. 그 노력이라는 것을 인생 전반에 걸쳐하셨고 지금도 해내고 계신다는 게 대단하단 감탄이 나왔죠. 그리고 책으로 읽고 대단하다 생각한 분이 떠올랐는데요. 공자입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확고하게 섰고, 마흔 살에 사물의 이치에 의혹을 갖지 않게 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 <논어> 위정 편 중 -



<논어> 위정 편에 수록되어 있는 글로 공자가 자기 인생의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마흔을 불혹, 쉰을 지천명, 예순을 이순이라 부르는 것이 위 어록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어르신들과 대화하다 보면 곧잘 언급하시곤 합니다. 내 나이가 마흔이면 불혹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제가 <논어>를 통해 접한 공자는 ‘본인의 기준’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평생 노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제가 봤을 땐 참 갑갑하다 싶은데요. 본인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니(기록상) 이것도 참 신기해요. 공자의 제자들 역시 그 기준에 동의하고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니 말 다했죠. 그리고 시대를 넘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어요. 그 영향력은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기완성에 대한 기준은 달라도 완성을 향한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는 거죠.






기준이 필요해


완성하려면? 무엇인가 완전히 이루었다 말하려면 기준이 필요합니다. 각각의 어떠한 기준 말이죠. 아무것도 없이 도달했다고 말할 순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책을 완성했다, 그림을 완성했다, 이는 결과물이 어느 기준치에 다다랐다는 의미가 됩니다.

입시 미술을 할 때는 앞선 합격작들과 선생님들의 시범작들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완성의 기점을 아는 것이 어렵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내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는 누가 여기까지 그리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때문에 저도 미완성의 늪에 상당기간 빠져있었습니다. 물론 학부 시절에 그림 완성에 대한 이론을 배우기도 하는데요. 이론은 이론일 뿐 실전은 달라서요.


그래서 저는 미완성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미완성은 참 인간적인 의미를 담고 있거든요. 미완성 앞머리에 붙은 ‘미(未)’자는 ‘아니다’의 의미도 있지만 ‘미래에 할 것’이란 뜻도 가지고 있어서요.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의 어느 날 반드시 완성할 거라는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자자, 아직 미완성일 뿐 언젠가 완성할 거잖아요?



그렇죠? 언젠가, 반드시, 우리는 꼭 나의 어떠한 '기준'을 만나게 되고 세우게 될 거예요. 누구는 '고집'이라 하겠고, 누구는 '가치관'이라 할 테고, 누구는 '집념과 신념', '틀'이라 할 테지만요. 우리는 완성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실함을 갖고 있으니까요. 도달하는 부분도 있겠고, 끝까지 어려운 부분도 있겠죠.


어쨌든 그림은 작가의 자기완성에 따른 결과물이에요. 내가 변하는 것에 따라서 그림의 모양도 완성의 의미도 달라질 테고요. 사실 내 완성에 대한 기준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한 때의 변덕에 가까울 수 있어요. 그러니 넓고 크게 보아 내 삶의 방향성과 모습을 담고 있다면요. 그것도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나중에 다시 봤을 때 실망할 수 있어요. 지금 미완성으로 포기한 그림이 한 시간 뒤엔 완성이라 할만한 그림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러니 지금 그리는 그림이 사실은 내가 꿈꿨던 완성에 가까운 그림일지 누가 알겠어요? 이런 멋진 일들이 우리가 대가라 불렀던 화가들에게도 종종 발견되었던 모습이랍니다.





'과정', '노력', '실패', '인내'


과정, 노력, 실패와 인내가 있어 완성이 아름답습니다.




https://youtu.be/fdG-dda7 Z0 Y

FALL TO FLY -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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