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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림 Jun 16. 2022

나의 대나무 숲

왜 그려야 하나요(1)

어릴 적엔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요.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빨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시간을 흘려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지났다 싶으면 일주일이 지나가 있고, 한 달이 끝나 있는 걸 보니 정말 신기합니다. 이렇게 나이가 드는 거겠죠.


어릴 적 동네 작은 미술학원에 다니던 중 있던 일인데요. 다음 차례로 뭘 그릴지 정하려던 중이었어요. 마침 선반에 있는 작품집이 눈에 들어왔더랬습니다. 펼쳐보니 인체를 주로 그리던 작가였던지 살색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가득했죠. 어린 맘에 놀랐지만 그래도 작품이라고 하니 한 장씩 살펴봤습니다. 그런 제가 신기하셨던 모양인지 원장님께서 대뜸 따라 그려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8세 인생 처음으로 누드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친구들 눈총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뭐 어떠냐는 배짱으로 꿋꿋이 그렸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른 지금은 뭘 배웠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한 번쯤 미술 학원 안 다녀봤다고 하는 친구들을 찾아보기 어렵죠. 뭔지는 몰라도 통과 의례처럼 거치는 미술학원서 우리는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죠.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림을 그리고,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린이들의 제2외국어


나 응애 했어, 배고파, 자고 싶어. 울기도 엄청 울고 옹알이도 많이 하는데 처음 부모가 된 입장에선 알아채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아이들이 말보다 먼저 깨우치는 것이 바로 그림입니다. 낙서인지, 그림일지 모를 그림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지금 나한테 보이는 아빠는 얼굴이 엄청 큰데 눈은 쪼그매. 엄마는 머리가 뽀글뽀글하고 빨갛고 노란 옷을 많이 입어서 좋아.' 어린이들의 학습지나 연습장, 교과서에서 낙서를 많이 보셨을 거예요. 이렇게 아이들은 갓난아이 시절부터 말하고 말하고, 글을 쓰게 된 뒤에도 한참을 그림에 의지해요. 그러니 아이들에게 그림을 자유롭게 배우고 그릴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건 더 좋은 표현의 기회를 갖게 된 거라 할 수 있어요.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 그림은 아이들과의 즐거운 소통과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저는 수업 중 심심찮게 엄마, 아빠 자랑하는 이야기를 들어요. 아빠가 그려준 뽀로로라며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보여주던 아이, 지난 주말에 같이 그림 그리고 놀았다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아이들...... 특별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그림을 매개로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걸 느껴요. 실제로 엄마, 아빠가 그림을 좋아하고 또 관심을 가지셨을 때 자녀가 더 열심히 그리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부모와 자녀가 한 공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이 그림이에요. 더구나 내가 아는 만큼 좋은 미술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으니 먼저 배우고 아는 것도 중요하겠죠. 내가 할 수 있는 한 좋은 것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꼬불꼬불




어른이들의 대나무 숲


사람 인() 자는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어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일 거예요. 이렇게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린이들 뿐 아니라 모두에게 있어요.


그런데 어른이들은 오히려 나이 들수록 말을 안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속 이야기하는 게 어색해지고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가끔은 대화를 하고 싶을 때가 생기는데 그럴 땐 마땅히 표현할 곳이 없고요. 글이나 노래, 여행, 운동 같은 훌륭한 방법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림이란 취미가 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 있어요.


그림 그리기는 억지스러운 대화와 소통을 요구하지 않아요. 어른이들은 이미 다양한 사회 경험을 통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방법을 많이 알아버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소통이란 게 오히려 쉬운 듯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그림 그리기는 색감과 붓 터치, 소재와 주제 등의 비언어적인 수단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요. 눈치 볼 것 없이 속 시원하게 쓱싹쓱싹. 말 고르지 않고 그릴 수 있죠. 그림 한 장이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준다면 그건 또 나름대로 인생에 있어 힘이 나요.


간혹 나이 지긋한데 배울 수 있을까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셔요. 노년에 취미로 시작해 자신의 인생을 녹인 그림으로 작가로 등단하신 분도 계신걸요. 눈이 침침하고 손이 굳었다고 하셔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기입니다.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줄 그림 그리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정말 필요한 건 대화와 소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전과 달리 옆집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모습이라고 하지만 대화가 필요한 본성은 늘 나와 함께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글로서, 누군가는 노래로, 사회 활동으로 소통한다고 하지만 내가 필요로 할 때,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그림 그리기. 한 번 제대로 익혀둔다면 평생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남녀노소 언제든 한 공간에서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취미이니 이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린이들에겐 제2외국어로, 어른이들에게는 대나무 숲이 되는 그림그리기의 매력.

한 번쯤 그려보시길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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