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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엄마 Jan 10. 2024

친구가 손가락을 밟았어요.

  약 열흘 전, 학교에 갔다 온 첫째가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왜 아프냐고 물어보니 친구가 자기 손가락을 밟았단다. 자기가 바닥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남자 친구가 뒷걸음치다가 밟았다고 말했다.ㅠㅠ 걱정스럽긴 했지만 밟혔다는 손가락을 보니 약간 부었을 뿐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살살 만져봤는데 아이가 아파했지만 아까는 더 많이 부었었는데 지금 조금 가라앉은 거라고 했고, 원래 조금 엄살이 심한 아이이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을 밟은 친구가 '본인으로 인해 네가 다쳤다는 사실을 아냐, 너에게 사과는 했냐'는 등의 말을 물어보니 그랬다고 답했다.


(음... 그래도 나쁜 친구는 아니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별 신경을 쓰지 않고 하룻밤이 지났는데, 여전히 아이는 밟힌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했다. 겉으로 봐서는 정말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엄살이 있는 편이긴 해도 없는 말을 지어서 할 아이는 아니기에 걱정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는 학교에 갔다 올 때까지 계속 아프면 같이 병원에 가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나빠진 나의 기억력과, 자기 일임에도 야무지게 챙기지 않는 첫째와의 합심에 의해 그다음 날이 돼서야 병원에 갔다. ㅠㅠ 뭔가 첫째의 하교 후에 이것저것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중요한 병원을 안 가다니... 참 한심한 엄마다.


  정형외과라는 곳을 태어나서 처음 간 첫째는 신나서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엄마, 여기 우리가 맨날 가는 병원이랑 다르게 생겼어요.


와 신기해요.


  지가 아파서 병원에 온 건데, 순진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눈이 반짝반짝하며 좋아한다. 사실 그 애만큼은 아니지만 정형외과에 처음 간 건 나 역시 처음이라 신기하긴 했다. 둘이 오붓하게 앉아 수다를 떨다가 진료실에 들어갔다.


  별 거 아니라는 의사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길 답정너처럼 기다리던 나는 1분도 안 돼 '사진 찍고 다시 봅시다.'라는 말에 살짝 긴장했다. 그러다 X-ray 사진을 찍고 다시 진료방에 들어간 후엔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이는 우리 애기 손가락 뼈 사진을 아주 주의 깊게 보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



반대쪽 손가락이랑 비교해서 보고 있는데, 성장판이 살짝 다쳤을 수도 있다는 소견이에요.





"네????"


  나는 좀 전까지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내 모습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의사는 걱정이 돼서 지금 보고 있는 거라고, 똑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하며 한참을 관찰했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딱딱한 막대기에 싸주며 일단 약 먹고 일주일 후에 상태를 다시 보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구부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병원을 나서면서 그 전날 병원에 데려왔으면 조금 더 좋았으려나? 왜 우리 애기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는 후회들과, 앞으로 성장판이 다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내 아이 손가락을 밟은 그 남학생이 너무나 밉게 느껴진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는 첫째에게 그 이후에 다시 손가락 다친 거에 대한 이야기를 걔한테 했냐고 물어보니, 그 이후엔 딱히 다시 말하진 않았다고 답했다. 왜 다시 말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아이가 답했다.


음... 이미 자기 때문에 제가 다친 걸 아는데, 자꾸 말하면 그 아이가 죄책감 느낄까 봐요.



  아놔.. 이걸 착하다고 해야 하는지, 배려심이 깊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본인이 그렇게 다쳤음에도 상대방이 죄책감 가질까 봐 말을 못 했다는 건지... 나는 한 편으로는 나보다 어쩌면 더 어른스러운 그 아이 생각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이에게 학교에 가면 손가락을 밟은 아이에게 딸의 상황을 다시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00야, 일부러 그랬든 그렇지 않았든 엄마 생각엔 자기의 실수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죄책감 가질지 말지는 그 아이 감정이지, 그것까지 네가 생각해 줄 건 아니지. 그래야 그 친구도 다음부터는 조심하지. 안 그래?"


  잠깐 생각하던 아이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다음 학교에 간 날 내 조언에 따라 다시 그 애한테 말해줬냐고 묻자 그랬다고 했다. 그 아이는 무엇보다 무척 놀라는 눈치였고 미안하다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고 말했다.




  일주일이 지나 병원에 간 아이는, 또다시 일주일 후에 보자는 의사의 대답을 듣고 같은 모습의 손가락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에는 며칠 째 못 나가고 있고, 젓가락질을 할 수 없어 포크로 밥을 먹고 있다. 손가락이 다친 탓에 제대로 씻을 수 없어서 다시 아기 때처럼 내가 매일 샤워를 해주고 있다.


  씻기 전에 테이프를 풀고 다시 붙여줄 때 아직도 아프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언제까지 아플 건지, 예전처럼 통증 없이 젓가락질도 하고 피아노도 칠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건지 걱정이 된다. 부디 그 아이 마음처럼 아주 이쁘게 손가락이 자라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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