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사가 되어가는 과정
어떠한 용기가 비롯되어 기술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떠한 오기로 인해서 편안한 오솔길을 거스르고 싶어 하는 걸까?
그에 답은 그저 평범하게 안주한 채 살다 보면 40대에도 주위와 환경을 탓하며 마지못해 살아갈 것을 확신했다. 현실에 안주하면 미래가 흐려지는 걸 몸소 느끼기도 했고
그렇다면 30대에는 인생의 곡선을 직접 그려나가 보는 건 어떨까?
수많은 굴곡이 있어도 내가 그려나가는 선이라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걸 아니까
그런데 왜 기술자의 길을 도전하냐고 묻는다면 회사에서 배우는 것들은 회사를 위한 일들이라면 기술이란 건 내 것으로 만들어 나만이 할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게 끝이다.
내 안에서의 불협화음은 엇갈리고 삐그덕 대도 마치 주체적인 삶의 노래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 나름대로의 매력도 있겠거니와 나 자신과 충돌하며 협화음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 같기에
학원에는 나이도 직업도 생김새도 키도 팔길이도 다 다른 나를 포함한 10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1년 정도 쉬다 보니까 낯가림이 조금 심해져서 멀뚱멀뚱 '전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 시전을 하고 선생님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첫 대면의 그 어색함은 나 같은 아이에겐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지만 살다 보면 매번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선생님은 다행히 금방 오셔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장비들을 챙기라고 했다.
학원은 장비도 다 대여해 주는데 장비마다 번호가 적혀있었다.
호명하면 한 명씩 장비를 챙겨갔는데 전쟁 나가기 전에 비장하게 장비를 챙기는 느낌이 든다.
나는 4번이었다.
4번 정배솔, 4번 풀채, 4번 공구벨트, 4번 칼, 4번 줄자, 4번 테라, 4번 롤러, 4번 걸레주머니 4번 칼받이!
1도 모르는 생소한 장비를 가져와선 허리춤에 공구벨트를 메고 장비를 넣었다.
이 장비들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새 걸로 사놓고 가야 하니까 장비를 철저히 잘 챙겨야 한다.
나와 같은 조를 이룬 3번의 33살 오빠는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잘해보자는 내게 말을 건넸다.
이 오빠는 분명 외향형일 것이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행동이다.
어색함 속에서 통성명, 자기소개를 한다.
59세 연극을 하는 아저씨, 28살의 청년 두 명, 싱크대 설치작업을 하시는 50대 아저씨, 제조업 공장을 운영하시다가 개인사정으로 접으신 아저씨, 공인중개사 13년 하시다가 코로나 전부터 일이 없어져서 그만둔 아저씨, 서울에서 방송작가를 하다가 기술을 배우고 싶다던 34살 남자분, 광고회사에서 7년 정도 근무하다가 예비시아버님이 인테리어 쪽을 하셔서 도배를 배우러 왔다는 32살 언니, 손해사정사를 하시다가 휴가를 내어 도배를 배우러 왔다는 같은 팀 남자분과 나, 해서 총 10명이 같은 6기를 이루었다.
물리치료 했을 시절엔 주변에 온통 물리치료사뿐이었고 제주살이를 했을 시절에는 여행을 사랑하는 또래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다면 여기는 산전수전 다 겪고 달고 쓴맛을 겪어 본 인생선배들의 소굴로 들어온 것 같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몸소 깨달았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면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그런 세상. 알면 알수록 무서운 광활한 세상.
도배사가 되기 위해선 정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단어들이 있다.
첫 번째로 '초배'는 도배하기 전 진행하는 기초작업의 부직포, 운용지, 네바리 등의 시공을 통틀어 초배작업이라 한다.
두 번째로는 '정배'란 벽지를 붙이고 공기가 안 들어가게 정배솔로 정리해 주는 마무리 작업을 뜻한다.
세 번째로는 '노바시'란 건설현장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작업 시 어떤 부위를 늘리거나 혹은 연장할 때 일컫는 말인데 벽지에 풀을 발라놓고 접어놓은 후 5분 정도 벽지가 늘어나게 풀을 머금게 두는 도배 용어에 뜻한다.
네 번째로는 '소폭, 광폭, 실크' 대표적으로 쓰는 벽지인데 말 그대로 소폭은 폭이 좁은 벽지, 광폭은 폭이 넓은 벽지, 이 둘을 합지라고 하며 실크 벽지는 비닐로 되어있고 질감이 좋아 요새 신축에서 많이 쓰고 맞댐으로 시공하는 벽지이다.
도배사는 실기 위주로 배우는 게 9할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일부터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다.
아침마다 풀과 물의 배합(6:4) 엉키지 않게 잘 풀어놓고 한쪽에는 도구들을 씻을 물까지 준비해야 하며 사다리는 항상 부스의 오른쪽에 세로로 놓아두라고 당부하셨다.
'오늘은 계속 칼질을 연습할 거예요.'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나 쓰던 칼을 성인이 되어서 이 날카로운 칼을 잡으니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출입구 쪽 박스에 들어있던 소폭을 소분해서 풀을 바르고 노바시를 해놓으라고 했다.
풀솔로 도배지에 풀칠을 한 다음 접어서 5분가량을 두고 시킨 대로 몰딩에 벽지를 붙여 우아래로 칼질을 했다. 거의 마감은 5mm로 칼질을 해야 해서 5mm 칼받이를 대고 칼은 칼받이의 정 가운데에 두고 칼받이와 칼이 뜨지 않게 밀착 시킨 후 35도 정도 각을 기울여 칼질을 해야 한다.
칼질이 잘 되었을 때는 기분이 좋다가 한 번 씹히거나 속지가 남아있으면 얼른 뜯어버리고 새로운 벽지를 붙여 연습했다. 나는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지만 운동을 할 때나 칼질을 할 때는 왼손을 쓰는 양손잡이라 어느 손이 편한 지 두 손을 다 써보기도 했다.
한참 칼질을 하는 도중에
'이 칼질이 뭐가 중요하지? 도배사면 벽지를 붙여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말을 뱉은 난 다음 날 온장의 벽지를 붙이고 내 생각이 잘못 됐다는 걸 세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