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 지 1년이 넘었다.
병원을 나오고 나서 여행을 다녀오면 도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으나, 반년을 더 머뭇거렸다.
그 머뭇거림 가운데서 얻은 건 숨어있던 어린 마음과 다시 그리던 꿈, 사회 밖에서의 진실된 나, 불안이었고 잃어버린 건 철들었을 때의 마음, 편안함, 안정적인 것, 여유로운 직장인의 길이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일생동안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안정과 불안, 질병과 상처, 배신, 거짓 등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는데 최종적으로는 0으로 수렴한다는 인생 총량의 법칙이 새삼 기억이 난다.
얻은 게 있다면 잃은 게 분명 있다는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 없다.
한 번씩은 전문적인 일을 하던 내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유니폼이 멋지던 병원 거울 앞의 내 모습을 보면 멋지기도 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다 나았네요. 감사합니다."
소리 들으면 뿌듯해서 그날 하루가 따뜻한 날로 번질 때도 있었고,
그저 무난하게 살아온 인생길을 지금 이 글을 보는 누구는 사서고생길이라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일종에 '적성 찾아 삼만리'라는 타이틀로 나아가자는 포부 어린 다짐을 했어도
기술자의 길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주춤했다. 이젠 정말 시작을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도배학원을 찾았다.
마침 다음 주부터 진행하는 도배반이 있었다.
발급받고 뜯어보지도 않았던 내일 배움 카드를 꺼내서 카드지갑에 넣고 가까운 ㅇㅇ전문학교에 문의를 했다.
"전액 지원 되시네요. 7월 26일 전에 방문 한 번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네, 다음 주 월요일쯤 방문하겠습니다."
이제야 미루고 미루던 도배일을 한다니, 근데 마음이 어째서 편하진 않았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보는데 처음으로 접해보는 일이거니와 마른나무벽을 사다리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보기만 해도 힘든 일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며 지레 겁을 먹은 탓이었을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조금 지쳤던 찰나였기도 했는데 난 또 아마추어 서핑러처럼 파도에 휩쓸려보기를 자처하는 꼴이 된 것 같다.
내가 도배사를 제2의 직업으로 마음을 돌린 건 이 세상에 맞서보고자 하던 용기, 고생한 만큼 벌 수 있다는 기술자들의 말 몇 마디였다. 현실적으로 따지고 보자면 200 언저리의 병원 월급으로는 미래에 한 번이라도 꿈꿀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을 거들떠도 못 볼 것 같았다. 악착같이 기술을 배우면 훗날의 내가 조금 더 여유롭고 나은사람이 될 희망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