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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침잠mania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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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주 Jul 13. 2022

연구부장은 나야 나

생동하는 교육과정을 기획&운영하다

학교와 지역이 함께하는 마을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혁신적으로 운영하며 거둔 혁혁한 성과들은 내게 현장 실천가로서 자긍심을 만끽하게 해 줬다. 2년간 예체능부장을 맡아 행사의 여왕으로 발로 뛴 내게 당시 연구부장님은 넌지시 물었다. 


“여부장님~ 내년에는 연구부장을 해보면 어때요? 보통 교무부장은 교내 연장자 중에서 맡아도, 연구부장은 학교의 브레인이라서 없으면 밖에서 데려와야 해요. 내가 교무를 할 테니까, 자기가 연구를 해봐요.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요. ”


초임 때부터 선망하던 일이 내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마음으로만 꿈꿨고,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건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현임 연구부장님이 내게 그 보직을 넘겨주셨다. 그렇게 교직 7년, 부장 3년 차에 나는 대규모 혁신학교의 연구부장이 되었다. 학급, 학년, 학교 교육과정을 총괄 기획하고, 특색 및 역점교육을 브랜딩 하는 일은 머리에서 시작해서 발끝까지 실천하며 다시 마음으로 정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학교의 비전과 목표는 고유한 빛을 발현해야 하기에, 전체 학생, 교사, 학부모의 실천력을 담보해야 했다. 


실천을 통해서만 교육과정은 살아 숨 쉴 수 있다. 


생동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려면 학교 교육공동체의 생각을 오롯이 담고, 교육청의 정책 철학도 품어야 했다. 학교가 가정, 지역, 교육청과 괴리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잘 나아가기 위해, 학교 안팎의 교육 요구를 잘 파악했고, 교육청 및 교육부의 정책문건도 제대로 해석하고 반영했다. 아울러 매일 교장, 교감, 교무부장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학교 살림을 밀착 케어했다.      


학교의 교육과정이
내 머리와 손을 통해 완성되고,
입을 통해 전달하는 기쁨은 매우 컸다.







매년 3월 초, 학부모총회 때 천여 명의 학부모님께 본교 교육과정과 평가 전반을 알려 드리는 자리는 연구부장만의 특권이자 큰 부담이었다. 교육 현장의 장면들이 사실감 넘치도록 정확하게 담겨야 하는 교육과정 문서 작업은 극도의 치밀성을 요구했다. 300페이지가 넘는 학교 교육과정을 완성할라치면 학년 말, 학년 초 수개월 동안 극심한 두통에 숨도 턱턱 막혔다. 그렇게 온몸으로 수개월 간 교육과정을 잉태하고, 3월에 결재를 득하여 수립, 즉 출산했다.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완성하고 운영할 때의 희열이 마약처럼 나를 붙들었다. 

도저히 그만둘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일에 중독되었다. 그렇게 지금껏 8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연구부장을 도맡아 했다.      






학교를 옮겨서도 나는 항상 연구부장이었고, 교무부장은 매해 바뀌었다. 


연구부장 직을 오래 할수록 역량도 높아져서, 학교 간의 지역 교육과정 거버넌싱과 교육청 협력사업 네트워킹을 확장했다. 교육청이나 교육부 연구학교를 공모해서 선정되는 성취도 많이 누렸다. 온몸으로 부딪쳐 행한 다음 페이퍼로 완성한 계획서였기에, 내 손을 거친 공모 신청서는 거의 다 채택되었다. 연구학교 주무로서 사업을 총괄하는 기저에는 피나는 고민과 뼈를 깎는 고통이 항상 있었다. 이러한 노고를 통해, 여러 선생님들이 승진가산점과 전보가산점을 득하고, 학교장이 초빙교원을 받을 수 있는 포문을 연 건도 많은 보람 중 하나였다. 







일하면서 가장 기뻤던 때는,
복잡다단한 업무 절차가 나의 고민과 노력을 통해 
훨씬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할 때도, 사람들이 나의 말과 글을 통해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워딩과 표현을 최대한 가다듬고 정제하였다. 공을 들인 세련된 메시지는 즉각적이고 깔끔한 피드백으로 응당 돌아왔다. 내가 좀 더 오래 고민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면, 복잡한 구조에서 간결한 핵심을 추출할 수 있었다. 




에센스가 반영된 메커니즘을 적용했더니,
많은 이들의 불필요한 노고가 확 줄었다. 


나의 고민 과정은 비록 거칠고 험준했지만, 결과는 매끄럽고 세련된 소통 프로세스를 창출했다. 업무를 보다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개선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깨어있는 정신과 뜨거운 의지, 치열한 반성으로
 현장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0년 넘게 부장을 연임하며 교육 전반에 걸쳐 창의적인 업무 달성에 기여했다. 한 해 한 해 치열하게 나아가다 보니, 바라지 않아도 상은 따라왔다. 매년 교육청 표창장과 위촉장을 여러 건 받다 보니, 100장이 넘는 표창장과 위촉장이 쌓였다. 이른 나이에 교육부 장관 및 사회부총리 표창을 받았을 때는 온 가족이 기뻐했다. 교육 실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서, 교육부 연수 강사로 전국의 선생님들께 사례 발표를 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었다. 이렇게 업무에 쏟은 피, 땀, 눈물은 내게 벅찬 경험을 선물로 주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중책인 연구부장을 맡으면서도 학급 담임을 놓지 않았다. 


교직 14년 내내 담임교사로 임하면서 가장 귀한 교육 주체인 학생들을 매일 만났다. 나는 우리 학급 아이들 소속이었고, 그들은 나의 보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가꾼 화사한 교실에서 우리는 매일 만나 무럭무럭 자랐다. 내가 세상의 지혜 하나를 속삭이면, 아이들은 더 큰 반짝임을 담은 앎으로 우렁차게 화답했다. 격무에 시달려 피폐해진 나는 아이들 덕분에 숨 쉴 수 있었다.


 그들의 밝은 웃음이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산소였다. 


교학상장의 길에서 함께 웃고 울고 아프면서 나도 아이들만큼이나 무럭무럭 자랐다. 수업과 업무를 오래 많이 할수록 감각은 살아났다. 







이 감각은
초 단위로 움직임을 분석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세밀하고 꼼꼼한 그리고 민감하고 정확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은 아카이브의 힘과 본능적인 감각을 타고 모든 일이 물처럼 흘러가는 경지에 이르렀다. 학교 현장에서 내가 접할 수 있는 업무는 거의 다 섭렵하고 나니, 안정감은 다시 이면의 권태로 나를 위협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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